내삶의발자취

뒤돌아보다.

어풍대08 2015. 8. 8. 13:49

회상!

불현듯내스스로의지난날들을기록해보면어떨까?

하는생각이들었다.

내가어머니께듣기로는호적上원적인봉화군법전면소천리103번지에서,정유년 무신월 경진일(임오시)시간은오락가락한다,

암튼운곡천의다른이름인조래(卒川)평지말에서태어났단다.

원래.아버지께서는 춘양소로리관석에아버지의외갓집,즉할아버지(택호녹동할배)의처갓집에살으시다가 녹동할배의장인께서

喪妻를하시고,後妻를얻으셨는데,後妻되시는이가..녹동할배의부인 즉,녹동할배의장인딸보다나이가더어린사람인지라....

녹동할배의장인안동김씨할배께서맏따님(後妻보다나이가많은나의할머니;녹동할배의부인)을재산동면으로田地를장만하여

재금보내셨더니....녹동할배께서재산의田地를팔아서명호면삼동리하학골에안착하셔서,글을가르키시는것을業으로삼으셨다.

마침인근범바위에녹동할배와同門修學하신文友송선생이살고계신지라,녹동할배의맏아들初名昌壽(淳協)와차남,初名晶壽등이

손수기틀을다지고 기둥을만들어세우고 들보를얹고 흙바람벽을만드는등하여집을짖고,녹동할배는글을가르키는훈장을하시고

힘이닿는아들들은합강인근의옹기가마에서옹기를지게에다가지고다니면서생계를유지하셨다.

그러다가 세째아들淳榮은풍대공차남의後嗣로양자를보내시고

1940년경진년에둘째아드님淳晶을 안동도산 분내에집성촌을둔

永川李氏농암선생의방계후손이신,羲民之女有羊과혼인시키셨다

즉,나의아버지와어머니시니 아버지諱淳晶이스무살이요

어머니이유양여사가열일곱살이셨다.

결혼은하셨으나 거처할곳이마땅치않아여기저기더부살이를하셨으니   이무렵에안동도산면부내 외갓집동내에서처갓살이를하셨고 인근에서길쌈을잘하시기로 명성이자자하신외할머니德에외갓집살림살이는넉넉하였으나양반집자제로 농삿일을

잘못하시는 아버지는상당한고초를겪으셨다,

 따돌림도심하셨던것같은증언들이많더라,

이즈음에 이러한상황이너무안타까우신외할머니께서깊이감추어두셨던쌈짖돈500원아버지께주시고....아버지께서다시

이돈을아버지의재종형제이신작고하신어은골어른淳喆에게드려서살집을求해달라하시니 어은골어른이 평지말,과수원옆에

두칸짜리황톳초가집을구입해주셨으나 집과토지가주인이각각이라  신혼초의부부들이서 텃도지를내지못하여거의쫒겨나게생겼던차에 마침평지말 맨꼭대기부근에他地에서夫婦之間에들어와서 집을새로이짖던김아무개씨가,부인이夜半逃走한지라

상심끝에 어느날나의아부지를불러내어서 자신은부인이夜半逃走한상황에여기선더이상살기가싫고 마침 이집도 거의마무리가되었으며 특히이집은 텃도지가없으니 안심하고잘살으라하시며

주고간집이바로나의탄생처인 법전면소천1리6반103번지이다.

이곳에서 나의세째형성식부터아우 근식 위식 은주까지태어낳으며특히 은주동생은10월어느날내가학교에서돌아오니까어머니께서출산을하시고힘들어하시고계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