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조 40권, 12년( 1466 병술 / 명 성화(成化) 2년) 10월 23일 신유 1번째기사 강녕군 홍원용의 졸기
게으르지 않은 것을 간(簡)이라 한다. 홍원용은 홍여방(洪汝方)의 아들로서 여러 번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과 호조 참의강녕군(江寧君) 홍원용(洪元用)이 졸(卒)하니, 조회와 저자를 2일 동안 정지하였다. 시호(諡號)는 장간(章簡)이니, 온화하고 능하며 위의(威儀)가 있는 것을 장(章)이라 하고, 평이(平易)하고 (戶曹參議)를 역임하고, 〈외직(外職)으로〉 나가서 황해도 관찰사(黃海道觀察使)가 되었다. 후에 공신(功臣)의 적장자(嫡長子)라고 하여 강녕군(江寧君)에 봉해지고 숭정 대부(崇政大夫)에 승진되었다가 병으로 졸(卒)하였다. 홍원용은 문무(文武)의 재간이 없었으며, 다만 황음(荒淫)만을 일삼아 기첩(妓妾)을 지나치게 사랑했으니, 사람들이 이 때문에 그를 비난하였다. 아들이 셋 있으니, 홍도상(洪道常)·홍성강(洪性綱)·홍순성(洪循性)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