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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 남양부 부인홍씨 신도비 銘有序

어풍대08 2005. 12. 21. 23:39
贈  南陽府夫人,洪氏 神道碑銘,번역문 | 자료방 2005.12.21 01:39
홍왕식(dhkdtlr1015) http://cafe.naver.com/wndfkdwkdvk/208 이 게시물의 주소를 복사합니다

弘治10年丁巳{ 檀紀3830年,西紀1497年)(연산3년)3월16日에判敦寧府事,西陵君,韓公致禮가

仁粹慈淑大王大妃의 命을받들어

士洪(任士洪)에게傳하여曰,年前에,卿이 내 先考,襄節公墓碑에.글을써서神道를장식하게된것을

大端히기쁘게생각하오.

그러나.내先비,께서는,婦人으로서의,道義와閨房의儀節이본받을일이많은데,

碑石은先考한분만있어서야 되겠는가?

이번에도,역시 경의글씨를빌어야 하겠으니.원 컨데비문까지 찬술하여,내先世의 일을연결지어달라,

하시니

臣은황공하여감히몸둘바가,없어서,삼가  그 가승에의거하여이글을쓴다.

부인의성은 洪氏시니 南陽의名聲이높은家門이다.麗朝때부터,지금까지대대로공경재상이 이었으니,

휘,보현은,가선대부

중추부사,로서 부인의증조부 가되시고,휘길민은추충협찬개국공신자헌대부,남양군,집현전대제학,

시 문경,이니,부인의

조부가되시는데.이태조를보좌하여.조선개국때.큰 공을세운 공신이다.

휘 여방은 대광보국숭록대부의정부우의정겸,영경연,춘추관사,세자부,에 증직받고,

행직으로.자헌대부이조판서,보문각

대제학,시 문량 이니 도덕과 문장이 당대에 제일높았던,어른이였다

문량공이가선대부한성부윤,정부 의따님을취처하여,부인을 생하시니.부인은 나면서부터,

자질이범인들과는특이하고,

어려서부터,안색이온화하고,기품이유순하여장성하여서는,언어가 과묵하며,행동이근엄하며,

부모에게도홍정진성과

冬溫夏淸하는효도에 태만함이없으며,스승의교훈을받지않고도,일거일동이예절에

어긋남이없었으므로,문량공이,사랑하고.

귀중하게,여기더니 마침내韓氏에게출가하니,바로청주의대성 인가문이다.

수 문전태학사,휘 방신의증손이요.윤충위사,협찬정난동덕좌익공신,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 좌의정,연경연사,서원부원군.

시 양절,휘 확 의부인이시다. 이가문에 우귀하시어,공순하고,근검하게 처신하고.비고

를섬기고,제사를받드는데존경과정성을극진히 하고 친척간에화묵하고,노비를은애로서 거느리고,

자녀들로하여금,문장과덕행이겸비한 인품으로성장하도록교훈하였다.

양절공이 소시에 명나라 조정에서 광록사 소경 벼슬을받고여러차례황제의소명으로장기간명나라

서울에쳬류한바있었으나.

가정사 로 인 한 구애 가없었던것은,부인께서내조의임무로제반가사를태연하게,처리하였기

 때문이다.

이런까닭에,양절공이대단히경애하였다.

불행하게도,微微한身?으로인하여 회춘하지못하고,별세하시니,이날이바로,

경태경오(세종32년,단기3783.서기1450년)9월16일정사 요

향년이 47세였다.이해11월.임인일에 양주군북방소라산기슭에병좌임향자리에예장하였다.

3남6녀를생육하시니,인수대왕대비는서차에서 6번이된다,

대비는 아조의성종강정대왕을탄육하사.오늘날의태평성대를이루게되었으므로.

성종께서즉위하여 그은음을높이받들어서부인을.

南陽府夫人에 책봉하고 南陽郡을 南陽府로 승격 시켰다.

1남 치인 은숭정대부판돈령부사,서성군이요2남 치의 는자헌대부병조판서,청양군이요.

3남치례는 무과에등제하였고.숭정대부.

 영돈령부사 겸지 훈련원사.오위도총부도총관서릉군이니.모두공훈이있어좌리공신호 를내리였다

1녀는,첨지중추부사,이계령에게출가하고,2녀는,왕자계양군,증 에게출가하여

군부인에책봉되고.3녀는,현령김자완에게출가하고.

4녀는,동지중추부사,최정에게출가하고,5녀는,사직권집 에게출가하였다,

대왕대비는,2남1녀를탄육하시니,성종대왕이서차로는,차남이요,월산대군,이 장남이며.녀,

는명숙공주이다.

월산대군은,평양군박중선의따님을취처하였는데,자녀가없고,부실에서1남을두었으며공주는당양위,

홍상출가하여1남을생육하였다.

치인,은,중추원사,조서안의따님을취처하여.4남3녀를생육하였고.치의는,

군사 이항전의따님을취처하여,1남1녀를생육하였으며.

치례는연창위안맹재의따님을취처하여,1남2녀를생육하였으며,이계령은무자 하고,

계양은,3남3녀를생육하고,김자완은3남1녀를생육하고

최정은2남2녀를생육하고,권집은3남1녀를생육하였으니,내외손,중 대략몇사람만비석뒷면에

음기하여둔다.

놀랍도다.부인은,재상가문에서출생하여,현달한문중으로출가하사,

왕비를 낳아서성자신손을탄육하시니,금지옥엽같은왕족으로.모두

뛰어나고,아름다워서,왕비의덕이 자손에까지,선화하였고,금슬이화합하고,자손이 만당한 경조

로우리나라,억만년무궁한왕업을견고하게

다지시니,옛말씀,그대로미덕을심오하게,기른자는,그 발상이반듯이관대하다는것이다.

臣이일찍이시,서 도사,에기록된것을본즉,한중숙녀에 관계되는기사가 많아서,공처의절의다,

맹모의교훈이다.증아 의효도다.하여

대체로헤아릴수없이많으나,비갈에있어서는,세상이다~,공후경상,등 의벼슬에만,치중하고

부인층에대하여는소홀하게하였으므로.

도무지,사회교화에 기여된것이없다고하겠으며.이렇게된다면.

열녀전도 다시속편이 나오지못할것이요.부인들의 서화 까지도

폐지 될것이니,부인께서어버이에게 효도하고,시모에게순종하고,남편에게는 량처가되고,

자식에게는현모가되어,그 숙덕과美行이.

하나만이 아니라선덕을쌓고,경복을길러서후세에 나려주심은.詩書圖史의기재된것에

견주어본다면,더욱 찬란하게,빛나리다.

우리,대비께서,성덕을현양하여,보본하고추원하는성의를극진히 하고져,하시는데,

臣이문사가 얕고서체가,부족하여만분의일,이라도

잘 저술하여,높으신 덕 을현양하시려는 분부를 다 하지못하옵고,삼가,

머리를 조아리며,銘하여드림니다.

                  弘治10年丁巳(檀紀3830年.西紀1496年)6月   日建 ,

            嘉善大夫,行 義興尉上護軍,臣 任士洪奉敎 謹撰,倂書 篆額

                        자료옮김.2005년을유12월21일.노유동사는왕식  옮겨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