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정일당이 남편 윤광연(尹光演)에게 준 쪽지 편지의 일부이니(아내의충고이다)
원문]
俄者似聞,自城內還駕,歷入某家,果然否? 此雖士夫家,今方賣酒. 夫子之與客歷訪,固出偶然,而安知外人不謂沽飮也? 古人詩云: “君子防未然,不處嫌疑間.” 可不警惕耶?
俄聞夫子責人聲氣過厲,此非中道也. 如是而設或正其人,己先不正,其可乎? 願加審思.
易曰: “節飮食.” 酒是飮食中一大端, 願夫子節飮而愼德. 俄以何事切責某人? 或不幾於過中之責耶? 聲色言語,君子尤當用功處. 詩云: “溫溫恭人,惟德之基.” 夫子責人時,頗少溫和之氣,敢以仰告.
益齋(黃潤鍾)自幼不入酒肆,夫子恆稱其士夫之一節,而屢坐於某家何也? 似違言行相顧之意, 請更勉之.
晝寢則氣昏志墮, 多言則怨生謗興, 過飮酒則戕性而喪德, 多吸煙則損神而長傲, 俱宜戒之.
君子非禮不言, 怪力亂神, 子所不言. 近聞門下少輩, 說利談怪, 漫浪度日, 何不嚴責, 使之正容讀書?
從夫子遊而終始不渝者無多, 此不可咎人, 當反求諸己矣. 若言不忠信, 行不篤敬, 我無自脩之實, 則奚暇點檢他人? 曾傳云: “有諸己而後求諸人” 敢以是仰勉.
- 강정일당(姜靜一堂, 1772~1832), 「척독(尺牘)」, 『정일당유고(靜一堂遺稿)』
[번역문]
조금 전에 밖에서 돌아오실 때 아무개의 집에 들르셨다는 것
같던데, 그것이 사실인지요?
그 집이 본래는 사대부 집안이도 지금은 술을 팔고 있습니다.
당신이 지인(知人)과 함께 가신것은 실로 우연이겠지만, 남들
이 어찌 술을 사 먹으러 갔다고 말하지 않겠습니까.
옛사람의시에 “군자는 미연에 방지하는 법, 의심받을 곳에는 가
지를 말라.”라고 하였으니, 조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조금 전 당신이 누군가를 꾸짖으며 지나치게 성을 내셨다고
하니, 이는 중도가 아닙니다.
설사 이렇게 해서 그 사람의 잘못을 바로잡는다 하더라도, 자신
이 이미 바르지 않은데 어찌 옳다고 하겠습니까.
깊이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주역』에 “음식을 절제하라.”라고 하였습니다.
술은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니, 음주를 절제하여 덕을 길러나
가시기 바랍니다.
조금 전에는 무슨 일로 아무개를 심하게 나무라셨는지요?
혹 지나친 책망은 아니었는지요?
목소리나 표정, 언어는 군자가 더더욱 조심해야 할 것입니
다. 『시경』에 “온순하고 공손한 사람은, 오직 덕의 바탕이니
라.”라고 하였습니다.
당신은 남을 꾸짖을 때에 온화함이 부족하기에 감히 말씀드립
니다.
익재(益齋 황윤종)가 어려서부터 술집에 발을 들여놓지 않은
것을 두고 당신이 늘 사대부다운 행실이라고 칭찬하셨습니다
. 그런데 정작 당신은 아무개 집에 자주 가시니 이는 어찌 된 일
입니까?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가르침에 위배되는 듯하니, 고치
도록 힘쓰시기 바랍니다.
낮잠을 자면 기운이 어둡고 의지가 약해지며, 말이 많으면 원
망이 생기고 비방이 일어나며, 술을 많이 마시면 성품을 해치고
덕을 손상시키며, 담배를 많이 피우면 정신을 손상시키고 오만
한 마음을 키우니, 모두 경계해야 할 것입니다.
군자는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않으며, 괴이함[怪異]ㆍ용력
(勇力)ㆍ패란(悖亂)ㆍ귀신(鬼神)은 공자(孔子)께서도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요사이 문하의 젊은이들이 이로움이나 괴이함에대해 말하면서
쓸데없이 날을 보내고 있다 합니다.
어찌 저들을 엄히 꾸짖어서 용모를 바르게 하고 글을 읽도록 하
지않으십니까?
당신에게 배우러 온 사람 중에는 학문에 대한 의지가 시종 변
함없는 자가 많지 않습니다.
이것은 남을 탓할 게 아니라 스스로 돌이켜 반성해야 할 일입니
다.
만약 말에 진정성이 없거나 행실이 독실하지 않아 스스로 수양
하는 실상이 없다면 어떻게 남을 단속할 수 있겠습니까.
대학』에
“자기가 선해야만 다른 사람에게 선을 요구할 수 있다.”
라고 하였으니, 이 점에 힘쓰기를 청합니다.
*********************해설********
윗글은 강정일당이 남편 윤광연(尹光演)에게 준 쪽지 편지의 일부이다.
정일당은 세조 때의 공신이자 문장가인 강희맹(姜希孟)의 후손이며,
모친은 권상하(權尙夏)의 종현손녀이다.
그녀보다 6년 연하인 윤광연 역시 명문가의 후손이었으나, 후대로 오면서 가세가 기울어 매우 곤궁한 처지에 놓여 있었다.
정일당은 이런 윤광연을 설득하여 학문을 하게 하고, 당시의 대학자 강재(剛齋) 송치규(宋穉圭)의 문하에서 배우게 하는 등, 윤광연이 학문의 길을 걷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그렇다고 그녀가 남편을 위해 희생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는 집안 살림을 홀로 맡아 꾸려가면서도, 남편 옆에서 바느질하며 어깨너머로 경전을 공부하였다.
남다른 재능과 성실함, 학문에 대한 열정을 겸비한 그녀는 30세 무렵부터 경전 공부를 시작했음에도 13경을 두루 통달하여 훗날 여성 성리학자로 불리는 경지에 이르렀다.
학문에서 그녀는 남편을 이끌어가는 입장이었으며, 시문과 서예에도 조예가 깊었다.
윤광연은 그런 정일당을 깊이 신뢰하고 존경하였다.
그는 훗날 지은 제문(祭文)에서,
그녀는 자신에게 엄한 스승과 같은 존재였으며, 그 덕분에 자신이 학문과 인격을 도야할 수 있었다고 토로하였다.
그는 평소 자신에게 잘못이 있으면 덮어두지 말고 말해 주기를 정일당에게 당부하였다고 한다.
비록 학식과 재능은 정일당에게 미치지 못했더라도 윤광연의 이 같은 자세는 본받을 만하다고 생각된다.
매사 자신보다 나은 아내에 대한 열등감 없이 상대의 장점을 인정하고 그 충고를 기꺼이 수용하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사소한 실수에도 때로는 과민하게 반응하고,
옳은 말도 ‘잔소리’나 ‘바가지’로 생각하며 짜증 내기 쉬운 것이 부부 사이다.
너무 임의로워 서로 간에 지켜야 할 기본적인 예의를 잊어버리고 상처를 주는 경우도 있다.
‘남편은 아내를 엄한 스승처럼 생각하고 아내는 매사를 조심하여 조금도 소홀히 함이 없었다’
는 이들 부부의 삶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한쪽이 우월적인 지위에서 가르침을 주거나 존경의 대상이 되기보다는 서로의 장단점을 인정하고 보완해 주는 부부 사이가 더 바람직하게 생각되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러기 위해서는 못마땅한 일을 못본 척 눈감아 주기도 하고 듣기 싫은 잔소리를 감수하기도 해야 할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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