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談!!
옛기록속의이야기...
충암선생의혼사.(서덕민..
대명천지에 이 혼사를 마다할 위인이 있을까.
전주 목사 이상원의 여식이라면 열다섯 된 아들 하나가 전부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삼남에 없었다.
집안은 또 어떠한가.
조선의 관직이란 관직은 모두 이 집안사람들의 이름을 들먹여야 얘기가 될 정도 아닌가.
이상원에게서 기별이 왔을 때 김숙은 어리둥절했다.
벼슬이라고는 이미 삼 대째 끊겨 촌에서 양반 행세 하는 것도 버거운 집안에 뭐 볼 것이 있다고 혼담을 넣는단 말인가.
관아에서 가마를 보내왔을 때 김숙은 거짓말 같은 혼담이 사실이라는 것을 실감했다.
가마를 타고 가며 김숙은 몰래 웃었다.
이제 방년이 된 막내 딸 다희의 혼사가 늦어져 김숙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게 어쩐 일인가.
이상원의 여식이라니!
불세출의 집안에 내 여식을 보낼 수 있다니!
출렁출렁, 역시 전주목사의 가마꾼은 또 다르구나!
이상원이 능숙한 가마꾼을 보내 이 김숙을 모셔가는구나!
김숙은 오랜만에 타는 가마의 흔들림에 배꼽 아래가 근질근질 했다.
김숙은 갓끈을 고쳐 매며 웃고 또 웃고 또 웃었다.
이상원의 집에 도착하자 종들이 나와 절을 했다.
이상원도 뜰로 나와 친히 김숙을 맞았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어르신.”
이상원은 읍하며 김숙을 맞았다.
“아니외다.
덕분에 편히 잘 왔소 대감.”
김숙은 자신도 모르게 “나리”소리가 나오는 것을 겨우 참았다.
이상원은 연배가 훨씬 많은 김숙에게 깍듯했다.
김숙은 전주 목사 ‘나리’를 알현하는 자리이긴 했지만 ‘어찌되었든 혼담을 나누기 위한 자리가 아닌가.’하며 적당히 존대하기로 마음먹었다.
방으로 들자 술상이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한상 가득 놓인 산해진미, 그 중에서도 상 한가운데 놓인 삶은 닭에 김숙의 시선이 오래 머물렀다.
김숙은 자신도 모르게 군침을 삼켰다.
침 삼키는 소리가 어찌나 컸는지 어린 시종이 놀라 김숙을 힐끗 바라봤다.
“먼 길 오시느라 시장하셨겠습니다.
어르신.”
이상원은 어색했는지 시종을 물리고 곧바로 술을 따랐다.
말끝마다 ‘어르신’을 붙이는 이상원의 태도에 김숙의 가슴은 더욱 두근거렸다. ‘이치가 어쩌자고 이렇게 나를 융숭하게 대접하려는가.’
김숙은 술을 마시며 생각했다.
이상원은 학문이 깊고 넓기로 소문이 자자했다.
지방으로 내려왔다고 술과 계집을 찾아 이곳저곳을 쑤시고 다니는 벼슬아치들과는 근본이 다른 사람이었다.
공무가 없는 날이면 홀로 방에 앉아 시문을 지으며 소일했다.
그의 문우들은 말끝마다 '춘추(春秋)' 들먹이는 그를 ‘춘추공’이라 불렀다.
고지식하기는 하지만 한 번 뱉은 말을 주워 삼키는 일이 없고,
결심을 하면 곧바로 실천하는 성격 때문인지 주위에 믿고 따르는 자들도 많았다.
술이 몇 순배 돌고 나서 이상원은 본격적으로 속마음을 내비쳤다.
“말씀 드린 것처럼 올해 열다섯 된 여식이 있사온데 부족하나마 어르신의 자제분과 짝을 맺어 보는 것이 어떠한가 하여 이렇게 모셨습니다.”
김숙은 몇 가닥 안 되는 수염을 쓸며 눈을 반쯤 감고 생각에 잠기는 체 했다.
술기운이 돌아 안정을 찾았는지 더 뜸을 들일 수 있었다.
술을 한 잔 들이켜고 김숙은 답했다.
“대감의 여식이라면 마다할 필요가 없을 것 같구려. 하하하.”
김숙은 호탕하게 웃었다.
물론 속으로는 쾌재를 불렀다.
“제가 드릴 말씀을 선생님께서 먼저 해주시니 송구합니다.”
자리는 무루 익었다.
거나하게 취한 이상원은 혼사에 대한 얘기는 추후로 미루기로 하고 계속 술을 권했다.
술이 몇 순배 더 돌고 이상원은 시종을 불러 먹을 갈게 했다.
술에 취하면 으레 시문을 짓고 읊기를 즐기는 이상원이었다.
“충암선생님 앞에서 결례가 되는 게 아닌가 합니다만, 시 한 수로 취기를 달래 보시는 것은 어떠신지요."
"하하하.”
이건 무슨 소린가?
충암 선생이라니.
충! 암! 선! 생! 김숙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를 충암으로 착각하고 있었구나!’
김숙은 충암이라는 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고을 근처 어디쯤으로 거처를 옮겨왔다는 얘기를 기억해냈다.
평생을 벼슬길에 오르지 않고 두문불출 하며 학문에만 힘쓰고 있다는 충암이 자신과 동명이었다는 사실을 김숙은 그 자리에서 알았다.
김숙은 사색이 되어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섰다.
이상원이 놀라 김숙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어르신 무슨 문제라도…”
김숙은 한 숨을 내쉬며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천장 모서리에서 거미 한 마리가 줄을 치고 있었다.
‘나는 이 봄이 지나면 저 거미줄에 걸려들 파리 같은 신세가 되었구나.
’ 김숙이 생각하다 중얼거렸다.
“천장에 거미집.” 이상원도 천장을 함께 올려다보고 말했다.
“허, 그것 참. 거미줄이 있군요.
시제로 삼으시면 좋겠습니다.
어르신.”
김숙은 자포자기 하며 대답했다.
“그렇게 하시오, 사돈.”
김숙은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버렸다.
이상원은 한참을 붓방아만 찧다 말했다.
“취기가 올라서 그런지 도무지 어렵습니다.
어르신.”
천장의 거미집?
김숙은 문득 자신이 장가를 들 적에 신부집에서 당했던
‘신랑다루기’ 즉 동상례(東床禮)가 생각났다.
그날 마을의 서생들이 처갓집으로 몰려와 신랑의 학식과 지혜를 떠본다며 시를 짓게 하고 화(話)를 맞추게 했다.
그때 마을의 서생이 ‘천장의 거미집’이라는 시제를 던졌던 것이다.
물론 당시 김숙 역시 머리를 긁적이며 진땀을 뺐다.
짓궂게도 마을의 젊은이들은 답을 미리 준비해 두고 있었다.
김숙은 다행히 답을 잊지 않고 있었다.
김숙은 이상원이 보는 앞에서 행서인지 초서인지 예서인지.
‘에라 모르겠다.’ 생각나는 대로 휘갈겨버렸다.
“天長에 去無執(하늘이 넓고 커서 잡을 수 없다)”이라고.
“역시 듣던 대로입니다.
충암 선생님!”
이상원은 김숙, 아니 충암 선생의 재치와 필력에 탄복을 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구 휘갈긴 필체에서는 묘한 매력이 흘러 넘쳤다.
그러나 김숙은 달갑지 않았다.
이제 며칠 후면 자신을 잡으러 아전들이 포졸과 함께 집으로 들이닥칠지도 모를 일이다.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김숙은 그만 자리를 뜨고 싶어졌다.
“오늘은 이만 일어나 보는 것이 좋겠소만.”
김숙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서자 이상원이 황급히 따라 일어나며 말했다.
“무슨 언짢은 일이라도 있으신지요.
” 김숙이 대답했다.
“조금 피곤해서 내 그만…” 잠시 머뭇거리다 이상원이 간곡히 말했다.
“충암 선생님, 오늘 하신 약조는 꼭 지키셔야 합니다!
혼사는 두어 달 후에 하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모든 준비는 제가 알아서…”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원은 자신이 만난 사람이 충암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새로 뽑은 아전의 실수로 일이 어그러진 것이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한참 차이가 나는 두 집안이 혼담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에 적잖이 놀랐다.
항담가설(巷談街說)이라는 것이 다 그렇듯 부정한 얘기는 그 나름 씹는 맛이 있었고, 의로운 얘기는 저절로 고개를 주억거리게 하는 맛이 있었다.
혹자는 김숙이 물에 빠진 이상원을 구한 적이 있다고 했고,
혹자는 김숙의 여식이 되바라져 이상원의 손자를 복중에 품고 있다고도 했다.
저잣거리의 이야기는 결국 이상원의 아들이 반푼이여서 김숙이 밑지는 장사라는 쪽으로 결론이 나고 있었다.
세상의 온갖 부정한 이야기와 세상의 온갖 의로운 예기가 뒤엉켜 사람들은 그저 즐거웠다.
이상원은 실수를 저지른 아전을 잡아다 주리를 틀어 저잣거리에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러나 온 고을에 퍼진 소문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군자 된 도리로 자신이 먼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상원은 실수를 저지른 아전을 조용히 불러다 놓고 모든 것을 함구한다면 목숨만은 부지시켜 주겠노라 했다.
이상원은 과중한 혼수를 요구함으로써 김숙이 먼저 물러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고 나자 김숙은 자신의 딸을 종가의 규수로 보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혼인 날짜가 다가오자 김숙은 결국 앓아눕기에 이르렀다.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혼사를 감당해 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앞뒤 가리지 않고 혼사를 치르겠다고 덤벼든 것부터가 실수였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가며 혼사를 미루기는 했지만 이제 더 버틸 수가 없었다.
문중에서 돈을 빌려 혼수 비용 일부를 충당한다고 해도 이상원의 집안에서 요구하는 수준으로 혼례를 치르고 신방을 꾸리기에는 돈이 턱없이 부족했다.
얼마 안 되는 전답을 팔아 딸을 출가시키고 모두가 굶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며칠 밤낮을 고민한 끝에 결국 김숙은 붓을 들었다.
“충암 선생의 이름을 뒤집어쓰고 대감을 욕보인 것도 모자라 부족한 여식을 귀 댁의 규수로 보낼 생각을 한 것이 못내 면구스럽습니다.
대감께서 군자의 도리를 알고 소인과의 약조를 지키시는 것을 보고 느낀 바가 많습니다.
반가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입신하지 못하고 촌로로 늙어가는 처지라 변변히 준비한 것은 없사오나, 얼마 안 되는 전답이라도 팔아 혼례를 치르고자 합니다. 더불어 사랑채에 작은 현판을 하나 걸고 서당을 열 생각입니다.
학문이 짧아 변변치 못하지만 촌아이들에게 천자문을 읽히고 부녀자들에게 언문이라도 몇 자 적을 수 있도록 하고자 합니다.
현판에는 ‘충암당’이라 적을 생각입니다.
충암 선생께 그간의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친히 현판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김숙의 편지를 받고 이상원은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과중한 혼수를 요구한 것이 못내 부끄럽기도 했다.
이상원은 자신의 부주의함과 경거망동을 사과하고, 예에 어긋나지 않는 소박한 혼례를 치르는 것이 좋겠다는 뜻을 편지에 담았다.
마당 한 구석 배롱나무에 꽃 멍울이 지는 것을 보며 이상원은 문득
“며느리는 김숙을 닮은 아이일까?
그랬으면 좋겠다”
중얼거렸다.
작가소개
- 서덕민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객원교수)
- 1979년생. 2004년 제 3회 대산대학문학상 시 부분 당선으로 등단했다.
- 시의 동화적 상상력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 현재 전주대학교 국어교육과 객원교수로 글쓰기 수업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