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陽(唐城)洪氏,麟州都領.中郞將派.14世大宗孫,原從功臣,숭정대부.판돈령부사.洪元用公
의차남이신.부제학.洪循性의처조부!公州李氏.恭肅公明德선생..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이명덕
[ 李明德 ]
이칭별칭 | 자 신지(新之), 호 사봉(沙峰), 시호 공숙(恭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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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 | 인물 |
시대 | 조선 |
출생 - 사망 | 1373년(공민왕 22) ~ 1444년(세종 26)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공주(公州) |
대표관직(경력) | 공조판서, 병조판서, 지중추원사 |
정의
1373(공민왕 22)∼1444(세종 26).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내용
본관은 공주(公州). 자는 신지(新之), 호는 사봉(沙峰). 할아버지는 운증(堣曾)이며,
아버지는 엽(曄)이다.
1396년(태조 5)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예문춘추관에 보직되었으며,
사헌부감찰·사간원우헌납·장령·사인·집의·좌사간대부·형조참의 겸 지도관사(刑曹參議兼知都官事) 등을 역임하였다.
1415년(태종 15) 승정원동부대언(承政院同副代言)이 되고 좌부대언에 승진하였다.
세종이 즉위하자 이조참판을 거쳐 병조참판으로 전임하였고,
그 뒤 강원도관찰사·예조참판·대사헌·동지총제를 역임하였다.
1430년(세종 12) 공조판서가 되었고, 이듬해 병조판서를 거쳐, 다시 공조판서가 되었다. 1438년 중추원부사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명나라에 갔다가 이듬해 귀국하였다.
그 뒤 판한성부사·인순부윤(仁順府尹)을 지냈다.
1442년 70세가 되어 벼슬에서 물러났으나 다시 지중추원사로 복직하였다.
이어서 판중추원사에 승진하여 궤장을 하사받았다.
우의정에 추증되었으며, 공주의 명탄서원(鳴灘書院)에 제향되었다.
시호는 공숙(恭肅)이다.
참고문헌
- 『태조실록(太祖實錄)』
- 『태종실록(太宗實錄)』
- 『세종실록(世宗實錄)』
-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 『국조방목(國朝榜目)』
- 『천해형릉고(天海亨綾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