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초기의 문신인 최보가 고구려(高句麗) 제9대 임금 고국천왕(故國川王)이 진대법(賑貸法)을 시행한 것에 대해 평한 글이다.
진대법은 보릿고개 때에 곡식을 빌려주었다가 가을에 추수한 뒤에 돌려받는, 당시로써는 획기적인 제도였다. 양식이 없어 굶어 죽거나 몸을 팔아 남의 종으로 전락하는 일을 막는 효과가 컸다.
그래서 그는 고국천왕이 정치의 요체를 안다고 높이 평가하였다.
반면에 그는 헐벗고 굶주린 노인에게 옷과 음식을 내려준 제(齊)나라 환공(桓公)이나, 겨울철에 자신의 수레를 동원해 백성들을 건네준 정자산(鄭子産)의 행위에 대해서는 진정한 정치가 아니라고 보았다. 그런 일을 담당하는 유사(有司)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신분에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한 것은 차후에 논할 일이다.
결정적인 문제는 그들 정도의 신분이라면,
한두 명이 혜택을 볼 수 있는 그런 방식보다는,
온 백성들의 어려움을 구제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리더나 정치가가 눈앞의 곤궁함을 보고 자잘하게 은혜를 베풀기 시작하면,
그로 인해 생기는 폐단이 만만치 않다.
한정된 재원 속에서 당장 한쪽에 이익을 주면,
다른 쪽에서는 그만큼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어머니가 우산 장수 아들이 불쌍하다고 비 오기를 기도하면, 짚신 장수 아들은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양(梁)나라 혜왕(惠王)이 희생(犧牲)으로 쓰일 소가 벌벌 떨며 끌려가는 것을 보고는 불쌍한 마음에 양으로 대체하라고 하였다.
얼핏 보면 참으로 어진 마음이다.
스스로도 무고한 한 생명을 살렸다고 뿌듯해 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 죽어간 양은 무슨 죄인가?
정말 동물들이 불쌍하다면 희생을 바치는 제도를 없애야 했다.
『맹자(孟子)』에 나오는 고사이다.
이런 현상은 인기와 여론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현대 정치권에서 흔히 볼 수 있다.
갑을관계,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적으로 파장이 큰 이슈만 터지면, 너나없이 우르르 몰려들어 조급하게 대책을 남발한다.
특히 약자를 배려한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국가 전체적인 차원의 접근보다는 무조건 약자 쪽에게만 유리한 정책을 수립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그런 졸속적인 일회성 대책은 장기적으로 볼 때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제대로 된 리더, 정치가라면 자신이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나 조직 때문에, 대신 죽어가는 다른 사람이나 조직이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