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이규보의 「괴토실설」이다. 이규보의 이름에는 유래가 있다. 이규보가 과거공부에 고심하고 있을 때 문장을 담당하는 별인 규성(奎星)이 꿈에 나타나 장원급제하리라고 알려주었다. 그 뒤 과거에 장원급제하고서 이름을 규성이 알려주었다는 뜻으로 규보로 바꿨다고 한다. 그는 이름이 상징하듯이 고려의 문장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토실을 국어사전에는 흙으로 원형이나 방형으로 두른 뒤 지붕을 얹어 만든 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 수필의 내용으로 유추하자면 그냥 땅 위에 흙으로 지은 집이라고 하기보다는 시골에서 가끔 볼 수 있었던 움집의 형태가 아닐까? 움집은 땅을 얼마간 파서, 예컨대 어른의 가슴 높이 정도나 아니면 어깨높이까지 파고 가장자리에 기둥을 세운 뒤 짚으로 짠 이엉으로 지붕을 덮은 집이다. 군에서 혹한기 훈련을 가면 야영을 할 때 이런 방식으로 막사를 짓는다. 땅을 어느 정도 파지 않고 노천에 그냥 막사를 세우면 혹독한 추위를 막을 수 없다. 집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땅 위에다 지으면 굳이 토실이라고 할 것도 없다. 당시 모든 집이 흙벽돌로 지었으니 말이다. 땅은 한 자만 파도 훈훈한 기운을 느낄 수 있으며 어느 정도 깊이 파서 위만 잘 덮으면 바깥 온도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다. 이규보의 아들들이 토실을 지은 방식도 이런 방식이 아니었을까?
어릴 때 산골짜기 마을에서는 한 겨울에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이규보의 아들들이 시도했던 것처럼 움막을 파거나 땅굴을 파서 무나 감자, 배추 같은 채소를 갈무리해두고 꺼내 먹었다. 아주 간단하게는, 상자에 흙을 담고 파를 윗부분을 자르고 흙에 묻어서 부엌이나 뒤주, 고방 같은 데 넣어두면 햇빛을 받지 못하여 파가 연두색 움이 돋는다. 이런 파를 움파라고 하는데, 노랗고 연둣빛이 나는 움파를 적당히 잘라서 잘게 썰어 넣고 양념간장을 만들어 국수나 수제비에 간을 맞춘다. 마른 나물이나 신 김치만 먹다가 움파를 넣은 양념간장으로 간을 맞추어 국수나 수제비를 먹으면 움파의 향기가 일품이었다.
이렇게 자연의 조건을 인간의 의도와 목적에 맞게 재조정하고 재구성하는 것은 그 또한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움집을 파서 꽃도 길러보고 채소도 갈무리하고 혹독하게 추운 날 따뜻한 곳에서 일 좀 해보겠다는 이규보 아들들의 생각은 당연하다. 그리고 이런 정도의 적응은 차라리 순진하기까지 하다. 그런데도 이규보는 움집을 지어서 꽃과 나무를 갈무리하고 겨울에도 길쌈을 하는 것은 자연의 운행과 질서를 교란시킨다고, 사람의 품격을 뱀이나 두꺼비의 수준으로 떨어뜨린다고 화를 내며 당장 허물어버리라고 을러대었다. 이규보는 엔간히도 꼬장꼬장하고 깐깐한 늙은이였나 보다. 아니면 고리타분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서 세상의 변화를 읽지 못하는 전형적인 책상물림이든지.
젊은이는 힘이 넘쳐나고 몸에 탄력과 순발력이 있으므로 생각도 민활하고 자연과 대상도 신축성 있게 받아들이며 대응한다. 늙은이는 몸이 굳어서 생각과 정신마저도 굳어버린다. 그리하여 젊은이와 늙은이는 늘 사물에 대한 판단, 사태에 대한 대응에 차이가 있다. 그러니 이규보와 같은 세상물정을 모르는 남편을 둔 아내나 시아버지를 둔 며느리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겨울이라고 왜 길쌈을 해서는 안 되는가? 모든 일이 다 제때가 있다지만 어디 제때에 재깍 마무리되는 일이 얼마나 되는가? 일철에 일을 다 마무리하지 못하면 미루어서 할 수도 있고 여름에는 급한 일을 하고 시간을 다투지 않는 일이라면 겨울에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일머리를 이규보가 몰랐을 리 없을 텐데 이규보는 왜 화를 냈을까? 이규보의 아들들은 어머니나 아내, 집안 여인네들의 고충을 덜어준다고 움집을 만들려다 꼬장꼬장하고 고리타분한 아버지에게 들켜서 코를 떼이고 말았으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이규보는 왜 고집을 부렸을까? 이규보가 말하고자 한 바는 어쩌면 기심(機心)을 경계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을까? 기심은 어떤 사태의 관절이 되는 즈음에서 일어나는 마음으로서 본질을 망각하고 외면이나 뭔가 이득을 추구하는 마음이다. 또한 국면의 변화를 꾀하기 위해 교묘한 의도를 갖는 마음이다. 자공이 남쪽 초나라에서 돌아다니다가 진(晉)나라로 돌아가려고 한수 남쪽을 지나가는데, 한 노인이 밭이랑을 만들고 있었다. 노인은 파낸 우물 안으로 들어가 옹기에 물을 길어 밭에 물을 대었다. 힘들여 일하였지만 결과는 보잘것없었다. 자공이 딱한 생각이 들어서 용두레라는 기계를 사용하는 방법을 소개하였다. 그러자 노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에게 이런 말을 들었소. 기계를 가진 자는 기계를 쓰는 일이 생기고 기계를 쓰는 일이 있는 자는 반드시 기심이 생긴다고. 기심이 가슴속에 있게 되면 순수하고 결백한 마음의 본질이 갖춰지지 않습니다. 순수하고 결백한 마음의 본질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정신이 안정되지 않습니다. 정신이 안정되지 않는 자는 도가 실려 있을 수 없습니다. 나는 기계의 편리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될까 봐 부끄러워서 쓰지 않을 뿐입니다. ” 자공은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이규보는 움집을 만들어서 화초를 키우고 채소를 갈무리하고 겨울에도 길쌈을 하는 편리성을 모른 것이 아니라 이런 일이 초래할 결과를 걱정했던 것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자연의 혹독한 조건에 적응하기 위해 이런 움집을 고안하여 편리하게 이용하겠지만 그로 인해 얻는 결실이 많아지면 반드시 이를 통해 이득을 챙기려는 마음이 생긴다. 이득을 챙기려는 마음, 잉여의 산물을 다른 물건이나 화폐와 교환하려는 마음이 생기면 이윤을 추구하려는 경쟁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기심을 아예 막으려고 하였던 것이다. 물론 마음은 억지로 막는다고 해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번 허용하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한다. 그래서 이규보는 아예 움집을 헐어버리게 하였던 것이다.
사람은 자연이 만들어낸 한 존재자이다. 북송의 유학자 장재(張載)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관계를 전통적 관념인 부모와 자식의 유비(類比)를 바탕으로 삼아서 형이상학적으로 재구성하여 “하늘은 아버지, 땅은 어머니. 나는 보잘것없는 존재로서 그 가운데 혼연히 있다. ” 하고 인간 자아의 존재론적 위상을 선언하였다. 장재는 이 말을 통해 사람이란 하늘 아버지와 땅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나서 같은 배에 태어난 형제자매인 모든 만물을 관리하는 책임을 맡은 주체적 존재임을 천명한 것이다. 인간은 부모인 하늘과 땅이 낳아놓은 모든 만물을 제대로 자라고 어울려 살아가도록 관리하고 배려해야 한다.
하늘은 시간으로 땅은 공간으로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주어져 있다. 현대 물리학의 최첨단 이론으로는 시간의 차원을 넘어갈 수도 있다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이론적인 문제이고 아직까지 사람은 여전히 시간의 지배를 받으며 공간의 한계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언젠가는 시간의 그물에 갇혀 삶을 마감하게 된다. 넘쳐나는 열정을 주체할 수 없는 연부역강(年富力强)한 한창의 나이에는 자기를 구성하는 시간과 공간의 범주를 한없이 확장하고 시간과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려고 몸부림치지만 어느덧 나이를 먹게 되면 시간과 공간의 맷돌이 한 치의 어김도 없이 서서히 자기를 갈아대고 있음을 몸으로 느끼게 된다. 이규보의 이 짤막한 수필 「괴토실설」에서는 자연의 운행에 대한 젊은이와 늙은이의 관점의 차이를, 약간의 해학미와 비장미를 통해 느낄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