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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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애정(滄厓亭) | ||||
![]() | 소 재 지 | : | 경상북도 봉화군 법전면 소천리 285 (원소재지 : 안동부 중춘양면) | |||
![]() | 건 축 주 | : | 이중광(李重光, 1709~1778) | |||
![]() | 건축시기 | : | 1742~1778년 사이 | |||
![]() | 중건시기 | : | 1801년(순조 1) | |||
![]() | 소 유 자 | : | 이홍(관리자 : 이홍) | |||
![]() | 문 화 재 | : | 문화재자료 제237호, 1991년 3월 25일 지정, 1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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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배경 |
창랑정사는 1901년 두릉 이제겸(李濟謙, 1683∼1742)을 기리기 위해 그 후손들이 지은 정사이다. 창랑정사 쪽에서 보면 창애정을 비스듬히 굽어본다. 이제겸은 이중광의 숙부이다. 이중광은 어릴 적에 이 숙부에게 가르침을 받았고, 그 뒤 이 숙부를 따라서 이쪽으로 옮겨와 살았다. 이제겸과 이중광 두 숙질 사이의 깊은 인연이 이렇게 또 이어지는 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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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애정은 정면 4칸, 측면 3칸 규모의 ㄱ자형이다. 평평한 대지 위에 누마루를 만들기 위해 기단을 다소 높이 쌓았다. 막돌로 만든 기단이며 여기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이고 우측 온돌방 앞으로는 1칸의 누마루를 설치하였다. 어칸의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칸을 두고 사방으로 퇴를 달아 계자각을 둘렀다. 내부의 좌측·우측에는 2짝 들어열개문을 2개씩 달았다. 온돌방의 전면과 측면에는 세살문을 달았는데, 문틀은 온연귀맞춤하였다. 대청은 우물마루로 꾸몄는데 청판의 구성이 귀틀모양으로 되어 있어 특이하다. 장귀틀은 도리방향으로 놓고, 동귀틀을 보방향으로 놓았으며, 동귀틀은 전퇴·후퇴까지를 동일부재로 사용하였다. 5량가로 구성된 대량 위에는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받게 하였으며, 종량 위에는 다소 키가 큰 제형판대공을 세워 마룻대를 받았다. 전체적으로 사용한 목재를 볼 때, 이 정자는 지을 당시 대단한 재물과 노력으로 공들여 지은 집으로 생각된다. |
현![]() |
창애정(滄厓亭) |
차강헌(此江軒) |
창애정 시판(滄厓亭 詩板) |
이중광은 1748년 현릉 참봉이 되었다. 그러나 벼슬에 뜻이 없어 잠시 부임하였다가 사임하고 돌아왔다. 돌아올 때 다음과 같은 시를 지었다. 이 시는 그 뒤 후손 이헌상(李憲相)이 글씨를 쓰고 시판으로 제작되어 되어 현재 창애정에 걸려 있다. 한없는 청산 속에 자유롭게 놀던 몸이 / 無限靑山自在身 어이하여 오릉(五陵)의 손님 되었던가. / 如何來作五陵賓 내일 아침 말 타고 청산(靑山)에 돌아가면 / 明朝騎馬靑山去여전히 청산 속 사람 되련다네 / 依舊靑山影菓人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