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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홍씨중랑장,예천문중홍의달,3등이나~컨닝?~~
어풍대08
2007. 3. 1. 23:54
정인지(鄭麟趾) 등이 대책을 고과(考課)하여 좌참찬(左參贊) 최항(崔恒)·참판(參判) 임원준(任元濬)·판서(判書) 김수온(金守溫)을 1등으로 삼고, 부윤(府尹) 강희맹(姜希孟)·제학(提學) 이승소(李承召)·감찰(監察) 김종직(金宗直)·도승지(都承旨) 노사신(盧思愼)·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양성지(梁誠之)·정랑(正郞) 정난종(鄭蘭宗)·저작(著作) 홍귀달(洪貴達)을 2등으로 삼고, 좌찬성(左贊成) 박원형(朴元亨)·밀산군(密山君) 박중손(朴仲孫)·좌랑(佐郞) 성준(成俊)·전 좌랑(佐郞) 고태익(高台翼)·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어효첨(魚孝瞻)·전 지중추원사(知中樞院使) 김신민(金新民), 행 상호군(行上護軍) 전동생(田秱生)·송처관(宋處寬), 정랑(正郞) 이맹현(李孟賢)·신의경(辛義卿), 판관(判官) 유지(柳輊)·생원(生員) 권열(權挒)·정랑(正郞) 유자빈(柳自濱)·주부(注簿) 조간(曹幹)·봉례(奉禮) 손비장(孫比長)·정랑(正郞) 박숙진(朴叔蓁)·저작(著作) 배맹후(裵孟厚)·사예(四藝) 정자영(鄭自英)·검열(檢閱) 성현(成俔)·경력(經歷) 홍의달(洪義達)·진사(進士) 조석보(曹碩輔)를 3등으로 삼아서 바치니, 임금이 1등의 대책(對策)을 취(取)하여 읽어보고, 다시 김수온(金守溫)을 장원(壯元)으로 하였다. 「어제구현재시장(御製求賢才試張)」이란 방(榜)을 예조(禮曹)에 내려 주고, 이어서 이조(吏曹)에 전지(傳旨)하기를, |
“대책(對策)으로 입격(入格)한 사람들 모두 가자(加資)하고, 자궁(資窮)한 자는 아들·사위·형제·숙질(叔垤) 중에서 대신 가자(加資)하라. 유생(儒生)도 아울러 가자(加資)하고 바로 회시(會試)에 응시(應試)하게 하라.” |
하였다. 대독관(對讀官) 정인지(鄭麟趾) 이하도 또한 대신 가자(加資)하게 명하였으며, 최항·김수온·임원준은 전의 예악(禮樂)의 대책(對策)으로 품계(品階)가 승진한 지 열흘도 못되어 또 품계가 승진하니, 사람들이 많이 이를 말하였다. 그러나 전일에 합격한 자는 모두 품계가 승지되었기 때문에 지금 책문(策問)을 내자 문사(文士)들이 모두 스스로 직질(職秩)이 승진하기를 희망하여, 남의 손을 빌려서 대책을 작성한 자가 반 수가 되었다. 또 위세(位勢)가 있는 자는 시권(試券)의 끝에다 성명(姓名)을 노출(露出)시키니, 시관(試官)들도 또한 그 성명을 먼저 보고 위세가 있는 자로서 쓴 글이 조금 괜찮으면 문득 드러내고 칭찬하고서 이를 거두었고, 그렇지 않으면 물리쳤다. 마지막에 가서 입격(入格)하여 가자(加資)한 자는 과연 권문 세가(權門勢家)의 친척·친구의 무리들뿐이었다. 어떤 한 관인(官人)이 본래 문신(文臣)도 아닌데 지은 대책도 또 기한 내에 미치지 못하여 홀로 하기를 매우 단단히 하고 승정원(承政院)에 청하여 이를 바쳤는데, 시관이 읽어보지도 못한 채 끝마쳤다. 입격한 다음에 보니, 바로 경력(經歷) 홍의달(洪義達)이었다. 봉하든 봉하지 않든 모두 그런 술책(術策)을 쓰니, 당시의 의논이 이를 비난하였다.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세조 33권, 10년( 1464 갑신 / 명 천순(天順) 8년) 7월 23일 갑술 2번째기사
정인지 등이 대책의 고과를 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