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하자면 기氣의 분리로 하나가 삼재(三才)로 조립되어 사람은 인(人)에서태어나서
부자가 대를잇는것은 곧 인간의 생명이 오래 지속되는것이다.
옛부터 말하여 오기를 한몸이 많은 파류(派流)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러는서는 몇대조 인지 조차 알수없다고 하였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실로 하나의맥이흘러 오늘에 이른것이다
그래서 성인(聖人)이 반드시 조상을위하는것은 그와같은 연유에서 비롯된것이고
또한 잊어서는 안될 기본이므로 씨족(氏族)의파계도 가 자연히 이루어지계된것이다
옛 전기를 살펴보면 누구는 누구의몇대조이고 누구는 누구의몇대손이라하고
또한 선인이라고 일컬어지는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의조상을들어서 말하되누구의조상은
이러한 공 이있고 또한 이러한 덕 이있고,이런재주가있으며,이런이름이있다고 함으로서
옛부터 조상을 중히여기고 선조를 공경하여 파계(派系)가 저절로 생기게 되었다.
우리나라는 기주(箕疇)의서술이후에 귀천이 구별되고 족속(族屬)의구분을 중요시하게되었다.
가문의여러가지 근본과세적(世籍)의 옛덕명(德名)이 어느골 어느성은 우리나라의 망족(望族)
이라고 하여 초나라 의 소굴(昭屈)과 당나라의최로(崔盧)같은사람과비교하기도하였다.
일휴(日休)는 가문이 쇠퇴하고 박복하여 가친이 일찍 돌아가시고 출생이 늦어서
백숙부모 마저 일찍돌아가시고 그선파(先派)에 단지 고증만의 기록만이 있을뿐이었다.
그런데 신유년봄에 사촌형명철(明哲)이 손에 족보를 들고와서 나에게보여주고
이것은 남양홍씨파계도(派系圖)로서 나의집에보존한것인데 선조로부터 전해온옛것이라하였다.
그러나 시조 태사공휘은렬 에서 상서공 휘사윤에 이르러 중단되고,그이하는 끊기어기록되지
아니하여 휘 사윤이 나의형제의몇대조 인지 알수가 없었다
그런데 마침 나의아들이 다행히 집에 족보를보관하고 있어서 이어서 기록하니 일휴(日休)는
그것을 받아서 벽에 걸어놓고 수일간읽어보니,한폭은 태사공에서 상서공에 이르러중단하고
한폭은왕경에서사종(嗣宗)으로끝나서 둘로 나누어 보게되었다
상서는 태사공의자손이고 사종(嗣宗)의사위가된다
이렇게 알려진대로상서가 수보한 왕저도상서의처당파 (妻黨派)인것이다
또한 고려의 시중 홍언박(侍中洪彦博)공은 일휴의증숙조(曾叔祖)이다
신도비를살펴보면 담암백문보의기록에 13대조휘은렬이삼한유공(三韓有功)하고 그이래로
자손이크게빛을보아모두가 보상(輔相)오르고,또한 광정공(匡定)에 이르러는공덕이관세(功德冠世)
하고가정을 잘다스렸고 장간공은 성품이순근하여극승유지(克承維持)라 하였다
장간공은 일휴의고조(高祖)시다
또한 집에보존하여광정공의얻은 자료를통하여 이부상서시(吏部尙書時)에 관적을위함에
학사공진(學士公縉)이 부친이시고, 할아버지가 사윤(斯胤)이므로,
이로인해 사윤의일휴의곤조(0祖)라는것을알게되었다.
또한당성군홍해중추홍약(洪海中樞洪約)의친형 이 어느날 진언하기를 내집의구보(舊譜)또한
아들의말과 같다하여,일휴는 이미집안과여러 백숙(伯叔)에 관해서 질의상고후
드디어 보충속기하여남양홍씨파계도(派系圖)라 하였다
아~!삼한(三韓)에서 당대에 이르기까지 오백여년에,부자형제를확실하게증명하고,또한
선조의적덕(積德)으로끼친유덕임을 알고 자족하리라
자손을 위하는자 는 마땅히 족보를 후세에 전하고 또한 일실하지 말지어다
경태 갑술 늦가을보름 지난날에 16대손 홍일동 記
2006년9월24일 제주의홍기섭님이보내주신번역본을,왕식옮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