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민헌의 손자 이해가 자기 조부모의 지난 일을 추모하여 조모(유씨 부인)가 기도
드리던
바위 위에 1653년에 정자를 세워 감암정이라 이름하였다.
이 각은
임란을 당하여 국가가 위태롭게 되자 한 선비로서 의분에 못 이겨 의거에 참가,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전사한 홍약창과 그의 아들 민현이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참전, 적과 싸우다가 역시 전사한 사실과 민현의 처 유씨 부인 유복자를 잉태하고 홍씨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하여 큰 바위 밑에서 지성으로 생남 기도를 드려 득남 후 훌륭히
기른 사실을 기리기 위하여 조성된 각이다.
성균 진사였던 홍약창은 원래
낙동 지방에 살고 있던 선비였다. 왜란이 발발하여 상주성이
실함 된 후 의병장 이 봉을 도와 왜병을 맞아 싸우다가 많은 전공을 세우고 장렬히
전사했다.
이 소식을 들은 아들 민현은 가족을 안전한 곳에 피하라 이르고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하여 전진에 뛰어 들어 수많은 왜병을 죽이고 장렬하게 전사하니 그의 말이 주인의
의관을
물고 피난 중인 가족에게 전하고 말도 기진 하여 쓰러졌다.
함창읍지의
충효록에 의하면 당시 세인들이 <만고의 충효지문이라> 칭찬하였다 한다.
부자 순국 후 미망인으로 시어머니 동래 정씨, 며느리 진주 유씨만이 남았는데 때 마침
며느리 유씨가 유복자를 잉태하였는지라 고부간에 약속하기를 아들을 낳으며 살아서
잘 기르고 딸을 낳으면 3대의 여자 모두 자결키로 하고 그날로 큰 바위 밑에서
생남 기도를 지성으로 드렸더니 영험이 있어 아들을 낳으니 이분이 현재 이곳에 살고
있는
홍씨들의 중시조가 되었다고 한다.
세인들은 하늘과 땅이 감동하여 생남
하였다 하여 당시 동명 병현리를 감암이라 개칭
오늘에 이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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