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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정절공 휘 沃의 장인이신 洪尙載 어른과 익성군 홍탁
어풍대08
2006. 1. 22. 08:58
홍탁(洪鐸) ?~1356(공민왕5년)
고려말기의 문신. 본관은 남양(南陽), 인성군 선(麟成君詵)의 아들이며, 충혜왕비의 아버지이다. 그는 또한 福源과 형제지간인 百壽의 손자이기도 하다.
그의 부친 詵이 남양홍씨(당홍계) 중랑장파의 파시조이기도 한데 鐸에게는 위로 형 綏가 있고 아래로 綱, 翊, 明理 등의 아우들이 있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평리(評理)로서 경상도진변사(慶尙道鎭邊使)가 되었을 때, 왕이 그 딸의 용모를 보고 반하여 의주(衣酒)를 내리고 딸을 화비(和妃)로 책봉하여 맞아들였다. 다음해 익성군(益城君)에 봉하여지고 성절사(聖節使)로 원나라에 다녀왔다.
1352년(공민왕 1) 사위 조일신(趙日新)이 반란을 일으키자 회원현령으로 좌천되었다. 아들은 尙載와 開道가 있는데 尙載의 따님이 정절공의 배위이시다.
홍상재(洪尙載) ?~1391(공양왕3년)
익성군 鐸의 아들이고 시중 채하중의 사위, 1357년(공민왕6)상장군으로서 채하중의 무옥에 연루되어 杖配, 후에 기용되어 1369(공민왕18)예부상서로서 명나라 태조의 즉위를 축하하러 맘경에 가서 처음으로 명나라와 국교를 맺고 돌아왔다.
1383년(우왕9) 문하평리로서 정조사가 되어 명나라에 갔으나 당시 고려의 친원 친명정책으로 인해 명나라에서 귀양을 갔다. 이듬해 명에 사신으로 온 정몽주의 주선으로 귀양에서 풀려나 귀국했다. 1391년(공양왕3년)밀직이 되고 당산군에 봉해졌다.
당산군께서는 우리 가문의 복권지조이신 정절공 휘 沃 선조님의 장인이시다.
출처 : 양성이씨 정절공 종회
글쓴이 : 28世 玲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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