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주정기
연주정기(戀主亭記)
연주정기(戀主亭記)
친구치기洪道根군이일전에법전으로 나를방문하야 내가고산(孤山)이선대(先代) 정자를지은지도 이미 몇년되었지만, 지금껏 사실을기록해 좋은글이 없었는데, 아마 오늘이 있기까지 기다린것같네.
마을노인들을 돌아보아도 이미 늙거나 돌아가셔서손을빌릴데도 없었으니 청컨데 그것을 기록해주시게 라고 하였다.
나는마을에 이웃하여 오래살았으므로 사양하여도 받아들여지지 않아 다음과 말했다
예전에 대학사(大學士)(대제학) 文良公은 홍길민의맏아들이고소혜왕후의외조부로 요직을 두루 역임하였으며,문장과덕업으로 한시대의이름난 선비가되었네.이윽고 나이가들어 은퇴하여서는 단계(파주장단의옛터)의옛집에 연주정을짖고 두보가 종안 을그리워하며 맑은위수 가를돌아본다는 뜻을담았는데, 이뜻이맑고도 밝게빛나 아직도 생각할만하네.
지금은그대 집안이몰락하여 영남으로내려온지 이미7~8世가되었는데,고향이늘어른거렸지만 생각은있어도 돌아가지못하였네.
이제 그대에게 이르러 제2의고향인 춘양(春陽)에 선대의정자를지어 아름답게 후손을모았네.
그러므로文良公의後孫된자가 겨울이나 여름이나 익히고 배우게된것이 몇백년이되었는데,이곳에서 단계상류와의거리가 또 몇백리일세.
대저 거친황야의 미천한사람중에 선대에서 임금을그리워한 정성을 능히혜아리고 알아서 그때의 깨끗한 교분을상상하는자가 몇이나되겠는가?
이것이 곧 이정자의 의의를 기록하는까닭일세.
문량공은 조정의본보기로 헌릉의명신이셨고 중국에사신으로가서는 명나라 태종의포사을받았으니 거듭하여 입은 은혜와영예로운은총이 비길데가드므네.
또 잇달아 8世代동안 벼슬이 이어지다가 봉계공에이르러임진왜란을당하여는 왕실에몸을바쳐 훈구를중흥하였으니 어찌그리도 선대하였던가?
대저 자손이 그조상에대하여무었보다도 그사업에 뜻을둔것을잊어버리지않아야 하니.우리회옹(주자)선생께서는 인장을새겨 거처하는커다란 방에 걸어두기까지하셨으니 후세대들이 오히려 이것을살펴볼수가있네.
하물며이제 그선대의정자를세워 고정의뜻을담고 이어서 옛날 연주정의이름을그대로걸어서 진령지사를부쳤으니, 이는악(악)은 그본래의나온바를즐겨하고예(예)는 그 근본을잊지않는다는것일세.
이보시게 치기!
이정자를 오르내리시며 아침저녂으로 부지런히일하여 혹 조금이라도 삼가지않아서 선대의가름침을 더럽히는일이없다면 문량공이 임금을그리던 정성과 후손이선대를 이은 효가앞뒤로 더불어 아름다을걸세.
서경에서 "선조의행한바를따르라" 라고 하였고.
시경에서는"자자손손 영원토록끊임없이 이 제사를이어가게하소서"라고하였네.
***글지은이:강필효(영조40년갑신1764년생~헌종11년무신1848년졸).
字는 仲順(중순)號는 海隱(해은)본관은진주(진양)이다.
순조3년계해1803년유일로 천거되었고.
헌종9년계묘1843년 통정에올랐다.
평생동안 도학에전심하며 후학을양성하였으며 저서에 해은집이있다.
*** 홍도근.남양홍씨중랑장파29世.字 치기, 號쌍호.堂號,제월헌.(정조4년경자1780년4월9일生.~철종7년병진1856년4월13일졸 )수77歲.
번역 봉화문화원.
옮긴이:2019기해년8월26일麟州都領中郞將派大宗家왕식 옮김
연주정과제월헌!
연주정은 우리남양(당성)홍씨 린주도령중랑장파13世大宗孫 南陽君 文良公의號이시고. 제월헌은중랑장파 大宗家29世이신 쌍호諱道根할뱀의堂號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