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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홍세공의 손자(홍필서(洪必瑞)를 만나보다 -계암일록
어풍대08
2018. 1. 11. 23:33
홍세공의 손자를 만나보다
1632년 10월 24일, 날씨가 맑았다. 섶을 놓아서 고기를 잡는 일로 큰아들이 아침 일찍 냇가로 나갔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김주한(金柱漢)이 찾아왔다. 함께 온 이가 있었는데, 임진왜란 때 작고한 감사 홍세공(洪世恭)의 손자였다. 이름이 홍필서(洪必瑞)라고 하였는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이에 큰아이가 돌아왔다. 꽤 많은 고기를 잡아왔기에, 그 자리에서 회를 쳐서 홍필서 군을 대접하였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본래 홍필서를 비롯한 형제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난을 피하여 서울에서 봉화 북쪽에 위치한 풍정(楓井) 고을에 흘러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홍필서의 아래로 두 동생이 있었는데, 이들 세 사람이 화목하고 모두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고 평판이 자자하였다. 또 흉년이 들면 사람들을 구휼하는 데 앞장섰으며, 평상시에도 의를 매우 중시한다고 뭇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김령 역시 이들 형제들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바였다. 홍필서 역시 인근에 사는 김령을 언제부터 한 번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마침 김주한과 이야기를 하다 찾아왔노라고 말하였다.
회를 마주하고 손님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군의 연배는 김령의 아들들과 비슷해 보였는데, 온 김에 하룻밤 묵고 갈 것을 청했다. 홍군 역시 감사하게 여기며 흔쾌히 그러겠노라 하였다. 김령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들들이 사랑채에서 그와 마주하여 밥을 먹고는 베개를 나란히 하고 같이 잤다.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올바른 젊은이를 마주하자 김령은 다소 기분이 좋아졌다. 또 자식들이 그와 같이 훌륭한 선비들과 교유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야기를 듣자 하니, 본래 홍필서를 비롯한 형제들은 서울에서 살고 있었다. 정묘호란이 발발하자 난을 피하여 서울에서 봉화 북쪽에 위치한 풍정(楓井) 고을에 흘러들어와 살게 되었다고 한다. 홍필서의 아래로 두 동생이 있었는데, 이들 세 사람이 화목하고 모두 몸가짐을 바르게 한다고 평판이 자자하였다. 또 흉년이 들면 사람들을 구휼하는 데 앞장섰으며, 평상시에도 의를 매우 중시한다고 뭇 사람들이 모두 칭찬하였다. 김령 역시 이들 형제들의 명성을 익히 들어온 바였다. 홍필서 역시 인근에 사는 김령을 언제부터 한 번 찾아뵙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였는데, 마침 김주한과 이야기를 하다 찾아왔노라고 말하였다.
회를 마주하고 손님과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홍군의 연배는 김령의 아들들과 비슷해 보였는데, 온 김에 하룻밤 묵고 갈 것을 청했다. 홍군 역시 감사하게 여기며 흔쾌히 그러겠노라 하였다. 김령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아들들이 사랑채에서 그와 마주하여 밥을 먹고는 베개를 나란히 하고 같이 잤다.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올바른 젊은이를 마주하자 김령은 다소 기분이 좋아졌다. 또 자식들이 그와 같이 훌륭한 선비들과 교유하는 것 역시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출처 : 장달수의 한국학 카페
글쓴이 : 樂民(장달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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