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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文明)의충돌.가치관,시각의차이.(1790년진산 사건(珍山事件)

어풍대08 2014. 8. 18. 13:23

문명의충돌.

1790년, 전라도 진산(珍山)의 진산사건.

1790년, 전라도 진산(珍山)의 선비 윤지충(尹持忠)과 그의 외사촌 권상연(權尙然)이 집안에 모시고 있던 부모의 신주를 불태웠다.

 우상 숭배를 금지하는 천주교의 교리에 따른 것이었다.

당시의 윤리 의식으로는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

죽은 부모의 신주를 불태우는 행위는 살아 있는 부모를 불태워 죽이는 행위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천주교에 대해 비교적 온건한 입장이었던 정조(正祖)로서도 묵과할 수 없는 사건이었다.

 결국, 정조는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천주교 박해 사건으로 알려진 진산 사건(珍山事件)이다. 

  죽음을 불사하고 종교적 신념을 지킨 두 사람의 용기와 신앙은 가상하지만 천주교의 교리를 따른 두 사람이 반드시 옳고, 전통 윤리를 따른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르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진산 사건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상이한 문명의 충돌이 빚어낸 비극이다.

 십자가를 받드는 이에게는 신주가 나무토막이고,

 신주를 모시는 이에게는 십자가가 나무토막이다.

십자가를 받드는 문명과 신주를 모시는 문명이 만나면 충돌은 불가피하다.

 윤지충과 권상연은 그 충돌의 희생자였던 셈이다. 

  새뮤얼 헌팅턴(Samuel Huntington)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냉전 이후 문화와 종교의 차이로 인한 문명 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으며,

이것이 향후 세계 평화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는 문명의 조화에 바탕을 둔 국제 질서만이 충돌을 막는 방법이라고 주장하였는데,

한편으로는 은연중 서구 문명을 보편적인 것으로 간주하여 사실상 문명 간의 충돌을 부추기고 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겉으로는 전통적 가치와 서구적 가치의 조화를 말하지만,

서구 중심주의를 철저히 내재화하고 있는 우리로서도 주의할 부분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문을 앞두고 나라가 떠들썩하다.

진산 사건으로 순교한 윤지충을 성인의 아래 단계인 복자(福者)의 반열에 올리는 시복식도 집전한다고 한다.

그것도 조선 왕조를 상징하는 광화문 앞에서 말이다. 파격적인 행보로 세계인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는 교황의 방문은 환영할 일이며, 신념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친 이를 기리는 것도 의미가 크다.

서구 중심주의에 대한 굴종(屈從)이 아닌, 서로 다른 문명 간의 화해와 포용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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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어떤 사람이 사소한 원한 때문에 남의 신주를 훔쳐다가 훼손하고 욕보인 일이 있었다.

얼마 뒤 범인을 잡아 관청에 소송을 걸었는데 고을에서 판결하지 못하자 관찰사에게 호소하였다.

관찰사는 장(杖) 90대를 치는 형벌로 논죄하고 풀어주려 하였다.

소송을 건 사람이 소란을 피우며 원통하다고 하였지만, 관찰사는 화를 내며 들어주지 않았다.
  이것이 과연 천리(天理)와 인정(人情)에 합당한가. 자식이 부모에 대해 살아서는 예로 섬기고,

죽어서는 예로 장사 치르며 예로 제사 지내는 의리에 합당한가.

살아 계신 부모를 섬기는 일은 차치하고, 돌아가신 부모를 섬기는 일로 말해보겠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비로소 밤나무로 신주를 만들어 집에 모신다.

집을 나서면 반드시 고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반드시 대면하며,

정월 초하루, 동지,

삭망이면 반드시 참배한다.

날마다 반드시 아침 문안을 드리고 제철 음식을 얻으면 반드시 올린다.

사중(四仲 음력 2, 5, 8, 11월)에 음식을 올리고 기일(忌日)에 제사를 지내며 계추(季秋 음력 9월)에 제사를 지낸다.

그렇다면 그 신주는 비록 한 조각 나무토막이라지만 실은 그 사람의 부모나 마찬가지이다.

世有以睚眥毛怨, 偸取人神主而毀辱之. 旣而賊人斯得而訟于州, 州不能決, 訴于觀察使. 觀察使論以杖九十之律而將放之, 訟者强聒稱冤, 觀察使怒不聽. 是果合於天理人情與夫人子之於親, 生事之以禮, 死葬之以禮, 祭之以禮. 今也姑舍事生, 祇就事死者言之. 其親旣死, 始作栗主, 返於室堂, 出必吿反必面, 正至朔望必參, 日必晨謁, 得時物必薦, 有四仲之薦, 有忌日之祭, 有季秋之祭. 其主雖曰一片之札, 而實人之父母也.
 
- 배용길(裴龍吉, 1556~1609), 「신주를 훼손한 자를 장 90대에 처하는 형률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毁神主杖九十律後私議]」, 『금역당집(琴易堂集)』 권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