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동미(權東美, 1525-1585)선생의송암정(松岩亭)
송암정(松岩亭)
“ 송림 사이로 비추는 달빛에 취하다 ”
1622년 3월 9일,
오천에 살던 김령은 큰아들 요형을 데리고 처가가 있는 봉화로 길을 나섭니다.
봉화로 가는 길, 길가의 봄 경치가 아름다웠습니다.
산에 펼쳐진 꽃은 꽃망울을 터트리려 하고, 혹 피어난 것도 있었고, 푸르고도 고운 풀 향기에 콧노래가 절로 나왔습니다.
봉화에 도착할 때쯤 처남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그날 저녁 처남들과 간단하게 회포를 풀고 잠이 들었습니다.
봉화에 김령이 왔다는 소식에 인근 사는 친구들이 하나 둘 만남을 청하며 술자리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3월 11일 권상원과 권상충 형제가 제일 먼저 김령을 청암정(靑巖亭)으로 초대했습니다.
청암정은 권씨 형제의 증조부인 권벌이 지은 누정으로 거북이 모양의 바위 위에 지어진 화려하고 아름다운 정자로, 반갑고 귀한 손님이 왔을 때만 초대하는 장소였습니다.
김령은 청암정을 에워싸고 있는 연못을 지나 누정에 올라 권씨 형제의 술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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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이 모양의 바위 위에 세워진 청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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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가 되자 권씨 형제의 사촌들과 김령의 처남들이 모두 모여 송암정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김령은 아들 요형을 데리고 송암정으로 갔습니다.
둘째 처남이 맛 좋은 술을 내어오자 밤이 깊도록 사람들은 자리를 떠날 줄 몰랐습니다.
다음날에는 풍산에 갔던 친구 효중까지 합류하고, 권씨 형제의 인근 지인들까지 모두 송암정으로 모여들었습니다.
11일에 시작된 송암정의 술자리는 사흘째가 되는 14일까지도 계속 이어졌습니다.
모두 크게 취하여 봉두난발을 하고, 혹은 구역질을 하다가 또 얼마 있다가 술상을 들여 술잔을 돌렸습니다.
14일 밤이 되자 김령은 더는 버티기 어려워 처가에 가서 쉬려고 살며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김령은 친구와 처남들의 눈총을 뒤로하고 용기를 내어 누정을 나섰는데, 누정을 감싸고 있는 송림 사이로 환하게 비추는 봄날의 달빛에 그만 발걸음을 멈추고 맙니다.
달빛에 취한 김령은 송암정 돌계단에 걸터앉아 달빛을 안주 삼아 또다시 술잔을 기울입니다.
1622년 3월 14일 맑음
또 술상을 들여왔다.
효중 및 주인 형제가 차례로 술잔을 올렸다.
나도 권함에 못 이겨 큰 술잔에 억지로 마셨더니 견딜 수 없었다.
밤이 되어서 내가 일어나 나오려니 봄날의 달빛이 아주 좋았다.
또 문밖의 계단 위에서 술을 마셨는데...
- 김령의 <계암일기> (1622년 3월 14일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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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림 사이에 자리한 송암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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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22년 봄날, 김령이 송암정 돌계단에 앉아 느꼈던 달빛은 어땠을까?
2014년 7월의 여름날, 송암정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김령이 살았던 오천에서 자동차로 출발하여 약 1시간쯤 봉화로 달렸습니다.
도착한 곳은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로 안동 권씨의 집성촌으로 잘 알려진 ‘닭실마을’입니다.
마을입구에서 20분쯤 산길을 따라 걷다 보니 ‘송암정’이 가까워졌다는 듯 넓은 들에 소나무 묘목이 가득했습니다.
소나무 묘목들 사이로 송암정의 기와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수 십 명의 젊은 선비들이 모여 서로의 소식을 전하고, 세상 이야기를 나누며 밤새 불을 밝혔던 송암정. 그러나 세월은 송암정을 기억하지 못했었나 봅니다.
아주 오래 버려져 있었던 듯 초라한 모습에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왔습니다.
잡초에 가려진 송암정 돌계단에 잠시 앉아 김령이 반했던 송림 사이의 달빛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송암정은 기억하고 있겠지요,
382년 전 이곳에 앉았던 김령과 그날의 달빛을….
송암정(松岩亭)
위치 :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유곡리 554
송암정은 권동미(權東美, 1525-1585)가 지은 정자이다.
권동미는 조선 중기 문신‧유학자. 본관은 안동(安東)이고,
자는 자휴(子休)이며, 호는 석정(石亭)이다.
어려서는 부친의 가르침을 받았으며, 자라서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568년(선조 1) 증광시 진사 3등 32위로 합격한 후부터 용궁현감(龍宮縣監)을 비롯하여 여러 곳의 현감을 지냈으며,
특히 초계군수(草溪郡守) 재임 때는 은혜로운 정치로 이름을 알렸다.
타고난 성품이 충직하고 신의가 있었으며, 행실은 굳세고 정의로웠던 인물이었다.
송암정은 1540년 권동미가 학문적 수양과 심신을 달래기 위한 휴식 공간으로 만들었다.
권동미는 송암정을 지으면 ‘송암정’이라는 시를 남겼다.
“신탄강 위에 나의 정자를 세우니
소박한 가운데도 즐거움은 넉넉해라.
오졸한 이 몸이 세상 버림받았으니
나의 생활은 지금부터 나무하고 물고기 잡기에나 붙여보리...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