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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원선생의백석정(白石亭)

어풍대08 2014. 8. 7. 10:28

백석정(白石亭)

백석정(白石亭) “이보게! 울지 말게, 나 괜찮다네….”

친구의 갑작스러운 죽음 소식에 조선 시대 한 선비는 친구가 가장 좋아했던 곳을 찾아갑니다.

선비는 친구와의 추억이 깃들어 있는 그곳에서 목 놓아 한참을 울고 난 후에야 세상을 떠난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1582년 4월, 예천에 살던 권문해는 오랜 친구 강명원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 1년 전.

 1년 만에 망자로 벗을 대하려니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습니다. 권문해는 곧바로 명원의 집이 있는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문경에 도착한 권문해는 명원의 집으로 가지 않습니다. 권문해는 친구 명원이 가장 사랑했던 곳,

생전에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그곳, 명원이 만든 정자 백석정으로 갑니다.

 백석정은 강명원이 일찍이 관직을 내려놓고 낙향하여 은거하며 학문에 전념했던 곳입니다.

친구의 흔적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그곳에서 권문해는 목 놓아 통곡했습니다.

그렇게 한 참을 울고 난 권문해는 겨우 마음을 추스르고 친구를 만나러 갑니다.

  • 백석정

    권문해가 친구를 그리워하며 통곡했던 백석정

  • 백석정

    3D로 복원한 백석정

그리고 한 달 뒤, 권문해는 다시 백석정을 찾습니다.

백석정에 마련된 명원의 빈차(嬪次)에서 권문해는 친구가 편안히 잠들 수 있기를 기도하며,

그를 위한 만시(輓詩)를 읊습니다.

‘어릴 적부터 글 쓰고 짓는 것을 좋아해 일찍이 생원과 진사에 합격하고 이어 과거에 급제하고, 곳곳의 마을을 다스리며 백성의 편안을 살폈다.

 그러나 시대는 그를 알아보지 못했고 곧 세상을 등지고 백석정에 숨어 외로이 술과 시로 나날을 보냈다.

세상살이에 눈 감고 귀를 닫으며 물결을 따르는 갈매기만이 그의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홀로 백석정에서 강을 내려다보자니 더욱 그립다.’
- 권문해의 <초간일기> (1582년 5월 13일 일기) 중 -

권문해는 그렇게 친구를 떠나보냈습니다.

432년이 흐른 2014년 7월, 조선 시대 두 선비의 깊은 우정을 간직한 백석정을 찾았습니다.

백석정은 금천, 내성천, 낙동강이 만나는 지점에 고요하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강명원은 벼슬을 버리고 속세를 떠나 세 강이 만나는 곳에 누정을 지었습니다.

서로 다른 물줄기가 자연스럽게 만나고 어울리듯 그 누구보다도 세상과 소통하고 만나기를 원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강명원의 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친구가 바로 권문해가 아니었을까….

강을 따라 모퉁이를 돌아가자 소박하고 깔끔한 백석정이 보였습니다.

 낮은 담장은 누정을 살짝 가리며 둘러쌓았고, 왼쪽 담장 사이에 좁은 문 하나가 활짝 열려있었습니다.
문 너머에는 백석정이라는 현판을 달고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기와집이 반듯하게 서 있습니다.

그리고 주인을 대신해 강명원의 시 한 편이 인사를 건넵니다.

 

斂跡紅塵外. 세상 밖에 자취를 걷어서
開亭碧峀傍. 푸른 산 옆에 정자를 세웠노라
逍遙有樂地. 소요하기에 좋은 땅이 있으며
漁釣送頹光.고기 낚으며 저무는 해를 보내네
白石千年白.흰 돌은 천 년토록 희고
長江萬古長. 긴 강은 만고에 길도다
粉粉名利者. 어지러이 명리를 찾는 자들
應笑此淸狂. 응당 청광은 웃으리

이 시는 400여 년 전 이곳에서 슬피 울었던 친구 권문해에게 ‘나 괜찮다네….’라고 답하는 듯합니다.

  • 백석정

  • 백석정

백석정(白石亭)
위치 : 경상북도 문경시 영순면 이목리 산 72번지
백석정을 만든 사람은 강제(姜霽, 1526-1582)로,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자는 명원(明遠), 호는 백석(白石)이다. 1549년(명종4)에 생원시와 진사시에 모두 합격하였으며 다시 1561년(명종16) 식년시 을과에 1위로 급제하였다.
성리학과 경학에 밝았으며 영해(盈海), 영덕(盈德) 현감을 거쳐 이조정랑(吏曹正郞)을 지낸 후 일찍 관직을 내놓고
낙향하였다.

 백석정을 짓고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여 후학을 양성하며 여생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