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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국.과거제도..소과(小科)입격(入格).대과(大科)급제(及第)

어풍대08 2014. 5. 24. 11:34

조선국 과거제도(科擧制度) 소과(小科) 대과(大科)

 

조선국 국왕은 관리를 선발하기 위해 과거제도(科擧制度)를 시행했고

 과거의 시험과목이자 정교(政敎)의 이념으로 채택된 유학(儒學) 교육은

 양반의 자제에 한정되어 있었으며

한성은 동부학당(타락산 아래),

서부학당(경운궁 위),

남부학당,중부학당(현 일본대사관)인 4학(四學),

지방은 향교(鄕校)에 들어가서 공부하여 소과(小科)에 입격(入格)하면 성균관(成均館)에 입학하는 자격을 얻었다.

 과거(科擧)는 문과(文科)·무과(武科)·잡과(雜科)로 구분하지만,

  문(文)을 숭상하여 문과의 비중이 컸고 양인(良人)과 양반이 응시할 수 있었으나 양인이 급제한 사례는 적었다.

무과는 신분상의 제약을 완화하여 무관의 자손을 비롯하여 향리(鄕吏),무예에 재능이 있는 양인(良人)에게 응시 기회를 주었다.

잡과(雜科)는 직업적인 기술관의 등용(登龍) 시험이었으므로 한성과 지방 관청에서 양성되는 생도(生徒)들이 응시했다.

 양반들은 잡과에 응시하지 않았고 천인은 이에 참여할 수 없었으므로 잡과(雜科)는 일정한 신분계급에 의한 세습·독점됨으로써 중인(中人)이라는 신분층이 형성했다.

 

 

 

소과(小科), 사마시(司馬試)로 불리는 생원과(경학 시험) 또는 진사과(사장 시험)에 합격하는 입격(入格)을 해야 대과에 응시할 수 있는데

소과는 3년마다 각각 100명씩 뽑았는데 

 초시에서 도별로 안배하여 7배수를 뽑았으며 소과 입격자에게는 백패(白牌)를 주었고 생원(生員)과 진사(進士)가 됐다.

시험 결과에 대한 전형(銓衡)이 끝나면 소과(小科) 입격자(入格者)의 성명을 성적순으로 써서 국왕에게 입계(入啓)하는 동시에 급제자(及第者)의 명단을 발표하는 괘방(掛榜)을 하고,

길일(吉日)을 택하여 전정(殿庭)에서 창방의(唱榜儀) 또는 방방의(放榜儀)라 하는 의식을 거행하였으며 시신(侍臣)과 4관(四館)의 참하관(參下官)들이 시립(侍立)한 가운데 거행되었고

생원(生員)은 동정(東庭),

진사(進士)는 서정(西庭)에 정열하여 국왕에게 4배례(四拜禮)를 올린 뒤 

 소과(小科) 입격(入格)증서인 백패(白牌)와 주과(酒果)를 하사받았다.

소과(小科) 입격(入格)한 생진사도 문과 급제와 같이 어사화를 꽂은 입격자들이 말을 타고 천동 (天童)을 앞세워 악수(樂手)가 음악을 울리며, 광대가 춤을 추고 재인(才人)이 온갖 재주를 부리면서 3 - 5일 동안 시가를 행진하는 유가(遊街)를 하였다.

 생진사들은 생원(生員)의 장원집에 모여 그 인솔 아래 궁궐에 들어가 국왕에게 사은(謝恩)하고, 다음날에 진사(進士)의 장원집에 모여 그 인솔 아래 문묘(文廟)에 가서 알성(謁聖)하였으며 문희연(聞喜宴)이라 하여 친척을 불러 잔치를 베풀고,시관(試官)을 초대하여 은문연(恩門宴)을 열었다.

동방자(同榜者)들은 동년(同年)이라 하여 우의가 두터워 형제처럼 지냈으며,

장원을 존대하여 항상 상좌(上座)에 앉혔다.

조정(朝庭)은 1 · 2소의 시관명(試官名), 입격자(入格者)의 성명 · 생년간지(生年干支) · 본관(本貫) · 거주(居住), 그 아버지의 관직(官職) · 명(名) · 양친의 유무 · 형제의 이름과 자(字)를 열서(列書)하고,

 권말(卷末)에 1 · 2소의 시제(試題) · 초시(初試)의 시행년월일 · 시관명(試官名) · 시제(試題) · 장원(壯元)의 성명을 부기(附記)한 사마방목(司馬榜目)을 인쇄하여 급제자(及第者)와 관계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대과(大科)는 3년 마다 치른 식년시(式年試)와 국가의 경사 등이 있을 때 수시로 치르는 특별시험 별시(別試)가 있었다.

 대과 초시는 최종 합격자인 33명의 7배수인 240여명을 선발하였는데 성균관(成均館)과 한성부가 가장 많고 경상도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순이다.

 대과(大科)는 복시(覆試) 합격자 33인이 국왕 앞에서 최종시험인 전시(殿試)를 치렀으며 갑과 3명, 을과 7명, 병과 23명으로 등급을 정했다.

  전시(殿試)의 결과에 따라 품계를 받았는데 최고 6품에서 최하 9품까지 받았으며 장원(壯元) 급제자는 6품의 품계를 받았고 문과(文科)의 급제자에게 홍패(紅牌)를 합격증으로 주었다.

 과거(科擧)에 급제하면 급제자(及第者)를 발표하는 방방(放榜) 의식이 정전 앞 전정(殿庭)에서 베풀어지며 국왕이 홍패(紅牌)와 어사화(御賜花)를 1급제자 장원(壯元)부터 순위대로 하사(下賜)한 후 급제자(及第者)를 축하하는 은영연(恩榮宴)을 베풀고 어사화를 꽂은 급제자(及第者)들은  말을 타고 천동(天童)을 앞세워 악수(樂手)가 음악을 울리며, 광대가 춤을 추고 재인(才人)이 온갖 재주를 부리면서 3일 동안 거리를 누비며 유가(遊街)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