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번역원,조순희선생의산문....반갑지않은손님....
갈수록 새해가 다가와도 즐거운 줄을 모르는 것은 나이를 먹는다는 사실 때문이다. 매년 11월, 12월이 되면 기분이 울적해져서 새해라는 두 글자를 거론조차 하기 싫어진다. 날짜가 점점 다가오면 평소 서먹서먹해서 만나고 싶지 않은 손[客]이 언제 내 집에 오겠다고 미리 알려온 것과 같아서, 아주 싫은 건 아니지만 관심은 거의 없다. 이윽고 초하루가 되면 그 손이 온 것 같아서 내쫓거나 피할 수는 없어도 조금도 반갑지가 않다. 마치 정든 친구가 멀리 떠나게 되면 헤어지기가 어려워서 이별할 때 그의 수염ㆍ눈썹ㆍ정신ㆍ노랫소리ㆍ웃고 욕하는 모습ㆍ옷차림ㆍ걸음걸이 등을 자세히 살피는 것 같으니, 이후로 혹 다시 만나지 못하게 되면 모습이 어느새 잊혀지기 때문이다. 일단 설날로 접어들면 오각계(烏脚溪)1)에 한 번 빠진 사람이 온몸이 까매져서 곤륜노(崑崙奴)2)가 되어 버리듯이 금년의 사람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은 마치 내일 병술년에는 천지 만물이 자연히 병술년의 빛깔을 나타내지 않을 수 없는 것과도 같다. 또 처녀가 납채(納采)를 하고 나면 다른 집안의 신부가 되므로 처녀라는 이름을 다시 얻고자 해도 될 수 없는 것과 같으니, 이것은 군왕의 위엄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고 부모의 사랑으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다. 또 애산(厓山) 앞바다에서 처절하게 항전하던 남송(南宋)의 배가 침몰한 것3)과 같으니, 송(宋)나라 백성이 원(元) 나라 사람이 되지 않고자 하여도 정삭(正朔)이 반포되고 천하가 통일된 다음에는 내키지 않더라도 원 나라 사람이 되는 것을 피할 수 없다. 除日有無限戀惜意, 正如遠別情朋, 愛而難離. 當別期, 則細審其人之鬚眉精神歌音笑罵裝束步趨, 以其或此後不逢, 則樣子居然忘了故也. 又如童子將冠, 吉日旣逼, 心中以爲“冠一加則童則別矣”, 必頻頻手撫編髮, 人情之恒然也. 除日夕陽將落, 則情又不忍, 必細玩夕陽, 今年之日色只有此故也. 須臾日落, 則其悵然難堪矣. 夜必加意靜觀星斗曰: “今年之夜, 隔如薄紙耳.” 忽五更雞鳴, 則無可奈何矣. 旣逢著元日, 則如一墜烏脚溪, 遍體黎黑, 成崑崙奴, 不可洗沐耳, 不可不爲今年人. 如來日丙戌年, 天地萬物, 莫不自然騰出丙戌年光色耳. 又如旣納采之處女, 已爲他家之新婦, 雖欲更得處女之名, 無如之何, 君王之威, 不可爲也; 父母之愛, 不可謀也. 又如厓海舟溺宋民, 不欲爲元人, 然正朔旣班, 區宇旣一, 則雖沒無況趣, 其爲元人, 不可逃耳. - 이덕무(李德懋, 1741~1793), 「이목구심서(耳目口心書)」, 『청장관전서(靑莊館全書)』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