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삼한의소국에대한자료!!!!
소라국에대한....
우리대종가고택이있던(함월당일대)소라선영에대하여....
삼한] 『삼국지』에 보이고 있다. 그 책에 의하면 삼한(마한, 진한, 변한)이 있었는데 마한에는 54개의 소국이 있었고, 진한과 변한에는 각각 12, 13개의 소국이 있었다고 한다. 또한 삼한 이전 중국에선 한반도 국가 전체를 개마국(蓋馬國) 혹은 개국이나 진국으로 불렀다. 고리국(古離國),*고비리국(古卑離國), 고원국(古爰國), 고탄자국(古誕者國), 고포국(古蒲國), 구로국(狗盧國), 구사오단국(臼斯烏旦國), 구소국(狗素國), 구해국(狗奚國), 내비리국(內卑離國), 노람국(怒藍國), 대석삭국(大石索國), 막로국(莫盧國), 만로국(萬盧國), 모로비리국(牟盧卑離國), 모수국(牟水國), *목지국(目支國), *백제국(伯濟國), 벽비리국(辟卑離國), 불미국(不彌國), *불사분사국(不斯濆邪國), 불운국(不雲國), 비리국(卑離國), 비미국(卑彌國), 사로국(駟盧國), 상외국(桑外國), 소석삭국(小石索國), 소위건국(素謂乾國), 속로불사국(速盧不斯國), 신분활국(臣濆活國), 신소도국(臣蘇塗國), 신운신국(臣雲新國), 신흔국(臣國), 아림국(兒林國), 여래비리국(如來卑離國), *염로국(冉路國), 우휴모탁국(優休牟涿國), 원양국(爰襄國), *원지국(爰池國), *일난국(一難國), 일리국(一離國), 일화국(日華國), 임소반국(臨素半國),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 지반국(支半國), *지침국(支侵國), 첩로국(捷盧國), 초리국(楚離國), 초산도비리국(楚山塗卑離國), 치리국국(致利鞠國). 난미리미동국(難彌理彌凍國), 염해국(冉奚國), 군미국(軍彌國), 여담국(如湛國), 호로국(戶路國), 주선국(州鮮國), 마연국(馬延國), 우유국(優由國) 고순시국(古淳是國), 반로국(半路國), *악노국(樂奴國), 미오야마국(彌烏邪馬國), 감로국(甘路國), 구야국(狗邪國), 주조마국(走漕馬國), 안야국(安邪國), 독로국(瀆盧國), 군미국(軍彌國) 군미국은 현재 진한으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위의 목록은 <삼국지> <동이전>을 참고 하였습니다. 사냥 나온 해두국왕을 죽이고 그 곳 나라를 취하였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량벌국), 골화소국(骨火小國)(=골벌국), 맥국(貊國), *창녕국(昌寧國), *구령국(驅令國), *소라국(召羅國), 우산국, 비지국(比只國), 다벌국(多伐國), *초팔국(草八國), 소문국(召文國), 실직국(悉直國) 그 중 심지는 웅촌면 검단리이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석탈해왕때 거도라는 사람이 신라에 합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울산은 "울뫼나라"즉 울산국이 되는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독노국, 장산국 또는 내산국등으로 표기하는 곳이 이 지역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서기 57∼79년 사이 신라 제4대 석탈해왕 때 거도(居道)장군이라는 장군이 장토야(張吐野)라는 들판에서 말놀이를 하므로 주민들은 해마다 하는 행사라고 여기고 또한 그를 마숙이라고까지 칭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군사를 일으켜 거칠산국을 공격하여 멸망시켰다. 이 멸망된 땅에 서기 505년 신라는 제22대 지증왕 6년에 와서 한곳은 거칠산국(居柒山國) 또 한곳은 갑화양곡현(甲火良谷縣) 그리고, 한곳은 대증현으로 각각 고을을 설치하였다. 이로서 최초에 고을이 탄생됐다. 서기 757년 신라 경덕왕 16년에 와서 전국적으로 고을의 이름을 한자로 개칭할 때, 거칠산군은 지금의 東來로 갑화양곡현은 기장(機張)으로 개칭되었다. 갑화양곡현으로 존속한 기간이 252년, 기장으로 불러진 이래 지금까지 1243년이다. 고을이 생긴 이후 무려 천오백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서기 185년 경에 서라벌에 병합되고 통일신라시대 지명을 한문어휘에 맞도록 고칠 때(신라 35대 경덕왕) 문소군으로 불려졌다가 고려초에 의성부로 개칭되었다. 조문국의 마지막 왕 경덕왕릉이 전해진다. 초기 신라의 속국이였다. 약 1980년대까지만 해도 동네 앞 숲에 당집이 있었고 그 안에는 구리왕의 위패와 구리왕에 대한 내력을 적은 기록문과 높이 약 15cm, 길이 약 20cm정도 크기의 구리로 만든 말 두 마리가 함께 보존돼 있어 매년 음력 대보름이면 마을에서 나는 곡식으로 5일간 근신한 제관들이 제사를 지내 왔었는데, 구리로 만든 말 두 마리는 약 1980년에 분실되었고, 위패와 기록문은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당집에 불을 놓아 소실되었다. 그후 동네사람들이 구리왕 유적이 없어진 것을 몹시 아쉬워하고 있던 차 82년도에 황터마을내 고층계에서 기금을 모아 옛날 당집자리에 비석을 세워 다시 옛 유적을 보존케 되었는데 그 비문에는 句利王位牌墓基城隍位(구리왕위패묘기성황위)라 적혀있다. 그리고 황터 북동편 소라리로 넘어가는 재 이름이 성재이고 그 잿마루에 직경 20cm 정도(인두석) 강돌을 주워다 석성을 쌓았던 유적이 남아 있는 것을 보아도 구리왕 전설의 흔적이 엿 보인다. 또한 이 지방 전설에 의하면 그 九靈國(구령국)은 서벽2리 금정골안 高直嶺(고직령) 밑 골짜기에 있었다고 하며, 召羅國(소라국)은 서벽리에 있는 소라리라는 동명으로 미루어 볼때, 소라리 아니면 황터에 부족국가가 있어서 두 나라가 싸운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다벌국 과 함께 신라 에 복속되어 초팔혜현(草八兮縣)이 되었다. 여섯 가야가 되고 이들이 뭉쳐서 연맹체를 형성하여, 구야, 가라, 가량, 가락 등으로 불렸다. 대가야(大伽耶) · 성산가야(星山伽耶) · 소가야(小伽耶) · 금관가야(金官伽耶) · 비화가야(非火伽耶) 등이 있고, 대가야국(大加耶國) 등이 나타나 있다. 탁기탄(啄己呑)과 멸망 당시의 이른바 임나십국(任那十國)인 가라국(加羅國) · 안라국(安羅國)(= 아라가야) · 사이기국(斯二岐國) · 다라국(多羅國) · 졸마국(卒麻國) · 고차국(古嵯國) · 자타국(子他國) · 산반하국(散半下國) · 걸찬국(乞飡國) · 염례국(稔禮國) 등이 있다. 그 중에서 지명고증이 대개 일치하는 것은 김해(狗邪國 · 金官伽耶 · 金官國 · 南加羅) · 함안(安邪國 · 阿羅伽耶 · 阿尸良國 · 安羅國) · 고성(古資彌凍國 · 小伽耶 · 古嵯國) · 합천(多羅國) · 고령(大伽耶 · 大加耶國 · 加羅國) 라고 한다. 독로국(거제), 고자국(고자미동국)(통영), 보라국(保羅國), 곤미국 김해의 해상교역권을 빼앗기 위해 가락국을 공격하였으나, 신라의 간섭으로 실패하고 만다. 문무왕 16년(676년), 골포현이 되고 굴자군 (지금의 창원)에 속하게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