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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춘양일대의정자..의양리,권진사댁...

어풍대08 2013. 2. 4. 11:11

문간 밖 왼쪽에서 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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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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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권씨 권진사댁(安東權氏 權進士宅)
소 재 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235
(원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235)
건 축 주: 권철연(權喆淵)
건축시기: 1880년(고종 17)
소 유 자: 권탄웅(관리자 : 권탄웅)
문 화 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90호, 1987-05-13 지정, 3동

건축 구성

건물은 대문채·별채·본채로 크게 구분된다.

9칸의 대문채를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이 있고, 마당의 좌측에는 3칸의 서실이 있으며, 대문채와 마주하여 口자형의 정침이 배치되어 있다.

정침의 양측 허리부분에는 토담을 좌·우로 뻗어 내외마당으로 공간구분을 하고 있으며, 동향 건물 임에도 툇마루를 설치하는 등, 남측 면을 적극 활용하기 위한 평면구성이 돋보이는 주택이다.

가양주를 빚지 못하게 한 권진사와 그의 가계

권착(1632~1705)의 자는 경우(景雨)이다.

묘는 소천 선애(仙厓) 성두방(星斗坊)에 있다.

배위는 여주이씨이다.

안동권씨 충재공 계열의 한 갈래가 춘양에 들어와 살게 한 사람이다.
권착의 아들 진사 권두광(權斗光, 1653~1726)의 字는 명언(明彦), 호는 일노당(逸老堂)이다.

묘는 석현(石峴) 미곡(美谷)에 있다.

배위는 의성김씨 김수(金燧)의 딸로 학봉 김성일의 현손이다.

아들이 없어서 양자를 두었다.
권두광의 양자는 권혜(權蕙, 1679~1755)인데, 생부는 권두위(權斗緯)이다. 묘는 춘양 나복당에 있다.

통덕랑이고, 증직 장락(掌樂) 정(正)이다.

배위는 숙인 예안김씨이고,

후 배위는 재령이씨 말암 이재의 딸이다.
권혜의 장자는 권정통(權正通)이고, 2남은 권정근(權正近, 1719~1797)이다. 진사 권철연의 가계는 권정근 계열에 속한다.
권정근은 字가 지겸(持謙)이고, 묘는 서당곡에 있다.

배위는 풍산류씨, 후 배위는 풍산김씨이며, 장자는 권사격(權思格)이다.

권사격의 장자는 권각도(權覺度)이고,

권각도의 장자는 권재보(權載輔)이다.

권각도는 6남을 두어 2남은 양자를 보냈는데, 진사 권철의 가계는 5남 권재익(權載益, 1820~1901)에게로 연결된다.
권재익은 字가 도겸(道謙), 배위는 완산이씨이고, 묘는 관석 옥녀봉에 있다. 아들은 권중하(權中夏, 1849~1919)이다.

묘는 법전 방현에 있으며, 배위는 진성이씨이다.
권중하의 장자 권철연(權喆淵, 1874~1951)은 字가 성길(聖吉), 호가 성암(省庵)이다.

1888년에 생원이 되었으며, 유고가 있다.

묘는 거곡에 있으며, 배위는 진주강씨,

후 배위는 진성이씨, 3배위는 청주정씨, 4배위는 김해김씨이다.
하루는 밀양에서 시집오신 분이 가양주를 빚어서 올렸다.

권철연은 맛있게 마시고, 누가 빚었는지를 물어 칭찬을 하고는 다시는 빚지 말라고 일렀다.

곡식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권철연의 근검절약하는 삶의 태도를 알게 하는 부분이다.

후손들은 권진사의 촌부 같은 삶의 모습을 다투어 이야기해 주었다.

손자들을 요와 베개도 주지 않고 맨바닥에 재웠다는 이야기, 어떤 과객이 오든 과객과 똑같은 상을 받았다는 이야기, 독서뿐만 아니라 풀 뽑기, 노끈 꼬기 등으로 소일하기도 하였다는 이야기 등이 줄을 이었다.

춘궁기에는 동네 사람들과 똑같이 먹도록 안식구들에게 엄명을 내렸으며, 봄에는 보리쌀과 쑥을 넣은 죽을 즐겨 먹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현 종손이 들려준 이야기들이다.
권철연의 장자는 권상경(權相經, 1890~1955)이다.

권상경은 字가 정부(正夫), 호가 석당(石堂)이다.

문집이 있다.

묘는 운곡 동촌에 있고, 배위는 진성이씨이다.
권상경의 장자는 1910년생인 권영환(權英煥)이고,

손자는 1943년생인 현 종손 권탄웅(權坦雄)이다.
권탄웅에 의하면 권철연은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에게 배웠고,

곽종석의 사후 문집의 출간을 위해 거금을 출연하였다.

당시 곽종석의 제자인 김창숙(金昌淑) 등은 유림계열의 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있던 중이었으므로, 그 돈은 문집을 발간하는 대신 독립자금으로 전용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탓인지 권철연의 자제인 권상경은 어린 나이에 독립운동 진영에 참여해서 활동하였고,

그 공으로 2005년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