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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화,춘양일대의정자..산천정사...

어풍대08 2013. 2. 3. 23:49

정면 오른쪽 전경

산천정사에서 바라 본 풍경

전경정면 오른쪽 전경

산천정사(山川精舍)
소 재 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낙천당마을
(원소재지 :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 )
건 축 주: 권철연(權喆淵, 1874~1951)
건축시기: 20세기 초반

진입로

건축 이야기

유학은 생활의 진리를 추구하지만, 생활의 번잡함을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속기에 더럽혀지지 않은 깨끗하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생활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꿈꾸는 것이다.

그것은 천지의 마음을 갖는 것, 자연의 자유롭고 넉넉한 자세를 갖추는 것으로부터 가능하여진다고 조선 후기의 처사들은 생각했다.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집, 집 안에 갖추어져 있는 정자 같은 것만으로 그들은 만족하지 않았다.

집은 생활이 구체적으로 진행되는 곳이고, 그 울타리 속의 어떤 부분이 아무리 한적하고 고요하더라도 이미 울타리 안, 생활공간 안에 자리 잡고 있다는 것만으로 은연중 묻어나는 생활의 속기를 완전히 떨쳐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권철연이 집의 울타리 밖에 정자를 따로 마련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건축 구성

산천정사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앞 선에 나와 선 5개의 기둥 중 오른쪽 3개는 원형이고, 왼쪽 2개는 각형이다. 마루는 앞의 기둥 선 앞쪽으로 30cm 정도 더 나와 있다.

이 부분은 쪽마루 영역이다.

이 쪽마루는 같은 폭으로 좌측과 우측 측면 끝선까지 이어지고, 북쪽 측면까지 나아간다.

북쪽의 경우, 우측 끝의 1칸 부분은 쪽마루 영역만큼 건물 선이 뒤로 튀어나와 있다.

이 부분의 방 안에는 벽장이 있다.
이 북쪽 1칸 영역만을 제외하고, 쪽마루가 사방으로 건물 전체를 돌아가며 있다.

이 쪽마루 영역에는 또, 동·서·남 세 방향의 끝선에 난간이 가설되어 있다. 50cm 높이 정도 되는 난간이다.

난간은 북쪽 끝선에서는 양쪽이 다 열려 있다.

건물에 오르는 계단 영역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으므로,

결국 난간 없이 터져 있는 이 쪽마루의 양쪽 끝부분이 오르내리는 통로 역할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다.
원형기둥이 앞 선으로 나와 있는 좌측 3칸 영역에는 반 칸 넓이의 마루가 가설되어 있다.

좌측 1칸 영역에서는 방이 끝 선의 기둥에까지 나와 서 있다.

산천정사는 중앙에 2칸의 마루방을 두고 좌·우 각 1칸 영역의 방을 두고 있는 구조이다.

우측, 그러니까 서편의 방은 정면 1칸, 측면 1칸 반 정도 크기의 통방이다.

좌측, 그러니까 동편의 방은 다른 칸의 경우와는 달리 정면 반 칸의 마루 영역이 없으므로 정면 1칸, 측면 2칸의 방 영역이라 하겠는데, 앞·뒤 둘로 나뉘어져 있다.

이 부분의 앞쪽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방이다.

이 부분의 뒤쪽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마루방이다.

이 마루방은 가운데 마루방에 비해 15cm 정도는 마룻바닥이 높게 가설되어 있다.

중앙의 마루방은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이 마루방은 앞쪽이 4쪽 방문에 의해 앞마루 영역과 차단되어 있다.

그러므로 좌측 앞 선으로 나와 있는 앞쪽의 방은 반 칸은 벽 안으로 들어와 있고, 반 칸은 벽 밖 앞마루 쪽으로 걸쳐 서 있는 형상이라고 하겠다.

곽종석의 정신을 이어받은 권철연


권철연(權喆淵, 1874~1951)은 전통시대의 마지막 시기를 산 인물이라고 하겠다.

근검절약으로 가산을 크게 일구었고, 여기 의양리에 집과 정자를 짓고 들어앉아 요동하는 세월 속을 지켜보며 살았다.

뒷산으로 더욱 들어가 앉아 산천정사를 지은 것은 이런 요동하는 세월의 한 가운데를 관통하면서 어지러워지고 불편하여지는 마음을 달래기 위한 목적을 갖는 것이기도 하였다.
그는 면우(俛宇) 곽종석(郭鍾錫, 1846-1919)의 제자이고,

곽종석은 그의 집에도 오고갔다고 하니 아마도 곽종석 역시 이 정자에 머물며 주인 권철연과 함께 기울어가는 시대를 걱정하였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