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돈지간에보내신간찰!!
경진년,이월이니..(1940년2월이다.)
나의외조부이신.영천이씨(부내,애일당후손)희민(羲民)公께서(이재근의조부님)
사돈이신,나의할아버지.녹동할배.字정여定如.諱茂鍾일명,鍾茂...께,
경진,이월에보내신간찰이다......
원본.춘천성식형님보관.
조선 중종(재위 1506∼1544)때 문신이자 학자인 농암 이현보(1467∼1555)의 별당이다.
농암 선생이 이 집을 짓고 94세의 아버지가 늙어가는 것을 아쉬워하며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애일당’이라 하였다고 한다.
애일당은 중종 7년(1512)에 처음 세워졌고, 명종 3년(1548)에 고쳐지어졌다.
지금의 건물은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원래는 낙동강 안의 분천동에 있었으나, 안동댐 건설로 1975년에 이곳으로 옮겨졌다.
앞면 4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농암 선생의 유적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건물이다.
농암(聾岩) 이현보(李賢輔) 선생의 별당(別堂)으로 중종 7년(1512)에 처음 지었고
명종(明宗) 3년(1548)에 중창(重創)하였으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朝鮮) 후기(後期)에 개건(改建)한 것이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전열칸(前列間)은 2중보(樑)를 걸었는데
종보(宗樑)는 홍예보(虹예樑)를 쓰고 그 위에 포대공(包臺工)을 세웠다.
퇴보(退樑)에도 홍예가 보인다.
가구형식(架構形式)으로 보아 구형(舊形)을 간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전하는 바로는 농암선생이 이 당을 짓고 94세의 노부(老父)의 늙어감을 아쉬워하여 하루하루를 사랑한다는 뜻에서 애일당(愛日堂)이라 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낙동강 안의 분천동(汾川洞)에 있었으나 안동댐 수몰로 1975년 이곳으로 옮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