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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의평리,당성군,홍상재할아버지의사위,양성인.이옥!!

어풍대08 2012. 3. 13. 20:49

(포천)강릉대첩의 이옥(李沃) 묘·신도비-양성이씨- 총.묘(塚.墓)

2011/11/06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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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천)강릉대첩의 이옥(李沃) 묘·신도비-양성이씨-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가양리 산213-4

[정절공 이옥(李沃), 정부인 남양홍씨 묘]

이옥[李沃, ?~태종 9년(1409)], 시호 정절(靖節), 본관 양성(陽城), 증조는 양성군 이천(李), 조부는

첨의평리 이나해(李那海), 아버지는 도첨의시중 이춘부(李春富), 어머니는 찬성사 허선(許선)의 따님 양천허씨이다. 아들을 4형제를 두었는데, 이사치(李思恥), 이사근(李思謹), 이사검(李思儉), 이사임(李思任)이다.

[정절공 이옥(李沃), 정부인 남양홍씨 묘]

공민왕 때 문과에 급제하였다.

[정절공 이옥(李沃), 정부인 남양홍씨 묘비]

공민왕 20년(1371) 아버지가 신돈(辛旽)의 일당으로 연루되어 처형되자 노비가 되어 강릉부에 예속되었다. 고려사절요에 의하면 『공민왕 21년(1372) 왜적이 강릉부와 영덕(盈德)·덕원(德原)의 두 현에 쳐들어왔다. 이때 이춘부(李春富)의 아들 이옥(李沃)이 몰입되어 동계의 관노가 되었는데, 왜적이 쳐들어오니, 우리 군사는 풍문만 듣고 패하여 달아났다. 부사와 안렴사가 옥이 용맹스럽다는 말을 듣고 군사를 주어 이를 치게 하니, 옥이 힘을 다하여 싸워 적을 물리쳤다. 왕이 안장 갖춘 말을 내려 주고 역을 면제해 주었다.』

당시 강릉부 일원에는 큰 나무가 많았는데 이옥이 밤사이에 사람을 시켜 나무마다 화살을 꽂아 놓았다. 그리고 이튿날 말을 달려 해구로 나아가 몇 개의 화살을 적에게 쏘고는 거짓 패한 체하면서 나무 사이로 달려 들어가니 왜구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이를 혼자서 당해내는데 나무에 꽂혀있는 화살을 뽑아 쏘며 종횡으로 달리며 치느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고전하여 마지않았으나 시위를 헛되게 당기지 아니하여 백발백중 명궁의 솜씨를 발휘하니 죽은 자가 즐비하였다.

이 때 안렴사는 김구용(金九容, 1338~1384)이다. 척약재학음집에 근거한 “문온공 척약재 안동김공 휘 구용 약사”에 의하면 ‘김구용은 공민왕 20년(1371, 34세) 민부의령겸성균관직강을 마치고 그해 가을 강릉도안렴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었다. 우왕 1년(1375) 삼사좌윤으로 옮겼을 때 정도전(鄭道傳)·이숭인(李崇仁)·권근(權近) 등과 더불어 북원에서 온 사신의 영접을 반대상소 하다가 죽주(죽산)에 유배되었으며, 다시 여흥(여주)으로 옮겨 江·山·雪·月·風·花를 벗삼아 많은 시문을 남겼다.’라 기록하고 있어 정절공 이옥의 용맹을 알고 왜구를 무찌르도록 군사를 내어준 안렴사는 김구용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왕이 듣고 이옥에게 말과 안장을 하사함과 동시에 그 일가의 역을 면제해 주고 벼슬을 내렸다.’고 하였는데 이러한 전과를 왕에게 보고한 이도 김구용이라 할 것이다. 이 후 우왕은 이춘부의 역적누명도 벗겨주었다.


[정절공 이옥(李沃) 묘 후경]


이옥의 이러한 강릉대첩을 재미있게 읽히기 위해 픽션을 더해 소설화하였는데 바로 신광철 작가의 「강궁」이다.

이후 이옥은 복권되어 우왕 13년(1387) 좌상시에 올랐다. 뒤에 조민수(曺敏修)의 일파로 창왕을 세우는 데 가담하였다 하여 이성계(李成桂) 일파의 공격을 받아 파출되었다가 이성계가 장수가 되었을 때 그 휘하에 들어갔다.

조선 건국 이후 은퇴생활을 하다가 태조 7년(1398) 중추원사, 정종 2년(1400) 조전절제사, 태종 5년(1405) 판한성부사, 이듬해 검교참찬의정부사를 지냈고, 1409년 개성유후사유후로 있을 때 죽었다.

실전하였던 이옥의 묘는 2001년 4월 1일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 산 48(구 군영리) 민통선 안 양천허씨 세장산에서 592년 만에 찿았고, 포천시 창수면 가양리로 이장하기 위하여 발굴할 때 고려자기 대접·접시·토기술병·놋식기 등 5점이 나왔다. 감정결과 고려 말 또는 조선조 초기의 자기로 현재 서울 마장동 양성이씨대종회관에 전시돼 있다.


[정절공 이옥(李沃) 신도비]


[정절공 이옥(李沃) 신도비문]

☞ 이나해(李那海) : 이춘부는 이나해의 장남이었다. 사나이라는 말이 이춘부의 아버지 이나해로부터 비롯되었다. 이나해는 장부답고 훨칠할뿐만 아니라 나해의 형제들이 모두 출사했고 아들들도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사람들의 부러움을 샀다. 사람들이 나해 같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사나해(似那海)라고 했는데 이 말이 ‘사나이 대장부’라는 말의 기원이 되었다고 한다.

***양성인,이옥!!남양홍씨린주도령중랑장파8세손이신,홍다구할아버지의서랑이,양성군이천이시고~

양성군의증손자,정절공,이옥할아버님은,홍다구할아버님의종제(사촌아우)강령부원군,관정공,洪詵

할아버지의손자,첨의평리,당성군,홍상재할아버지의사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