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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집(孤山集)이유장의문집(李象靖의序가있다(권지5에홍이원에게보낸서신이있다
어풍대08
2008. 5. 18. 21:00
조선 후기의 학자인 李惟樟의 문집. 9권 5책. 목판본. 이 책은 손자 載基 등이 편집하였고 1775년(영조 51) 현손 弘辰·象辰 등이 간행하였다. 부록 2권을 포함하여 9권 5책의 목활자본으로 권두에는 李象靖·丁範植의 서문이 있다. 시가 5백 수 가까이 되고 편지는 우담 정시한에게 보낸 것이 많아서 그와의 절친한 교유를 살필 수 있다. 또한 편지는 우담 정시한 그리고 갈암 이현일에게 보낸 것이 있어서 세 사람의 사상적 교유를 연구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유장의 특징적인 사상이 잘 나타나 있는 자료는 편지글이다. 특히 金儋에게 보낸 편지를 비롯하여 몇 통의 편지에는 時와 義를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없다는 저자의 사상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졸재 유원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사서와 『소학』을 먼저 읽어야 한다고 하는 유원지의 주장에 반대하고 『근사록』과 『심경』을 먼저 읽는 것이 퇴계의 가르침에 비추어 문제될 것이 없다고 하는 저자의 주장이 나타나 있다. 또 우담 정시한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벼슬에 나아가 큰 뜻을 이루는 것은 산림처사의 출처의 방도와는 다르지만 등용하면 나아가고 버리는 숨는다는 옛 성인의 원칙에 미루어 본다면 벼슬을 받는 것도 좋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잡저와 행장 등에서 위기지학 뿐만 아니라 입신출세를 아울러 중시한 그의 독특한 사상체계가 나타난다. 『고산집』에 나타난 여러 가지 종류의 문장을 보면, 전체적으로 안정되고 명확하며 순연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를 통하여 문장론뿐만 아니라 저자의 학문경향까지 살필 수 있다. (金鍾錫) |
1625~1701(인조 3~숙종 27). 字:夏卿, 號:孤山, 本貫:禮安, 父:廷發, 母:順天金氏, 居:豊山. 사마시에 합격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을 끊고 강학에 전념하였다. 『대학』을 門으로 삼고 『중용』을 宗으로 삼아 이 두 가지와 濂洛 제현의 글을 벽에 써 붙여 놓고 암송했다. 또한 『주역』과 『춘추』를 중시하였는데, 특히 춘추에 관련된 제가의 주석을 모아 1책을 만들었다. 주자와 퇴계의 상례와 제례에 관련된 예설을 모아 『二先生禮說』을 편찬했고, 우리나라의 역사에 관한 저술을 모아서 간략하게 정리하고 자신의 의견을 붙여 『東史節要』를 편찬했다. 60대 중반에 學行으로 천거되어 6품계를 뛰어올라 와서별제와 공조좌랑에 제수되었으나 나아가지 않았다. 또 안음 현감에 제수되었지만 사양하였고 익위사익찬에 제수되어 7일 만에 사직하고 귀향했다. 중년 이후 孤山村에 우거했으므로 사람들이 고산 선생으로 칭했다. 存齋 李徽逸·葛庵 李玄逸 형제와 교유하였으며, 특히 원주에 살았던 愚潭 丁時翰과는 사람들이 神交라는 말을 할 정도로 긴밀한 교유를 했다. 문집에도 그와 주고받은 시와 편지가 많은 편이다. 이러한 교유를 통하여 이유장은 義는 時를 떠나서 따로 존재할 수 없다고 하는 독특한 사상을 제시하였다. 즉 옳다는 것은 시공간을 떠나서 영원불변하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논리이다. 이러한 논리에 바탕을 두고 산림에 묻혀 독서 수양하는 것만 소중한 것이 아니고 입신출세하여 사회를 위하여 활동하는 것도 마찬가지로 선비의 할 일이라고 보았다. 같은 시대를 살았던 정시한, 이현일, 이유장은 17세기 영남유학사에서 일정한 역할을 담당했던 학자들로서 이들의 교유 관계는 연구할 가치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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答洪子致(爾遠) 6
洪爾遠에게 보낸 편지이다. 친구를 통해 알게 된 홍이원에게 쓴 안부 편지이다. 죽은 친구 김경렴을 통해서 홍이원의 학덕을 알게 되었고 또 열부인 그 어머니의 사적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만나고자 했지만 거리가 멀고 이미 나이를 먹어서 이루지 못했다고 하면서 몇 년의 여유만 주어진다면 한번 만나고 싶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