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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강직한홍무적~

어풍대08 2008. 5. 4. 00:49

송자대전(宋子大全) 제30권.

송명보(宋明甫)에게 답함 - 을유년(1645) 12월 2일.

두 차례의 글에서 삼가 다소의 말씀하신 뜻을 알았습니다.

감사하고 위로되는 마음 어찌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기억하건대, 장 부자(張夫子 송대의 학자 장재(張載)를 높인 말)가 굶어 죽은 사람을 보고서는 그만 밥맛을 잃었다고 하였으니, 어찌 서로 기가 통하여 손발이 저리는 것처럼 피부로 느낀 것이 아니었겠습니까. 정 부자(程夫子)의 이른바 ‘공(公)은 주리지 않는가?’ 한 말은 특히 형기(形氣 형체와 혈기)의 구분을 가지고 말한 것이요, 이치는 본디 막힘이 없는 것인데, 더구나 지금은 수사(收司)의 율(律)에 걸리게 된 때인데 말할 나위가 있겠습니까.
재차 올린 상소는 비록 윤허를 받지 못했으나 아직은 상소할 여지가 있으니, 여러 날 헤아려 보면 끝내 다시 상소하기로 귀착될 것입니다.
재령(載令 서필원(徐必遠))이 나에게 들러,

비록 홍모(洪某 홍무적(洪茂績))처럼 강직하여 남이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한다 할지라도 끝내 나가지 않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다. 그러나 지금 상의 융숭한 은혜에 대해서는 의당 한 번 사례해야 할 듯하니, 잠깐 나갔다가 곧 돌아오는 것이야 어찌 처신하는 데 해로울 것이 있겠는가.”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면전에서 즉시 감탄하기를,

“군자는 사람을 덕으로써 사랑하는 법이니 앞에 한 말이 바로 그것이다.”

하고, 한 번 빙긋이 웃으면서 작별하였습니다. 그때 영공(令公)이 또 형(兄)을 말하면서,

“대대로 교분이 매우 두터우니 서로 통혼(通婚)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하고, 나에게 소개하도록 했었습니다.
군필(君弼 신익륭(申翊隆))의 지적은 참으로 그렇습니다. 그러나 도심(道心)에 관한 한 조목은 평소에 주자(朱子)의 상소를 반갑게 읽고서 그대로 흉내를 내게 된 것이며, 또는 당시에 한 사람도 장순(將順 임금의 뜻을 순종하는 것)하고 대양(對揚 임금의 뜻을 백성들에게 널리 포양하는 것)하는 자가 없으므로 나도 모르게 그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니, 다른 사람들이 비웃고 헐뜯는 것을 의당 그대로 감수하겠습니다.
지금 이 상소 초고(草稿)를 종전대로 무턱대고 보내니, 통쾌하게 바로잡아 정서하여 돌려보내시기 바랍니다. 또 글자 수도 많지 않은데 내일 인편에 전해 올리려 하오니, 바라건대 다시 속히 보내 주시면 참 좋겠습니다.

출처 : 남양홍씨(당성)중랑장파종친회
글쓴이 : 홍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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